봇물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관련된 의혹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13일자 아침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을 대략 제목만 요약만 해봐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경향신문 <변양균 사법처리 방침> (1면)
국민일보 <변양균, 신씨 도피 도왔다> (1면)
동아일보 <검 “변양균씨, 신정아씨 미 도피 도운 정황” (1면)
서울신문 <홍기삼씨, 신정아 옆동 입주> (1면)
세계일보 <신정아 도운 고위직 2명 더 있다> (1면)
조선일보 <신정아씨 작년 청와대 2회 방문> (1면)
중앙일보 <뉴욕의 신정아 맨해튼 호텔 2곳에 묵어 / 미국 은행에 수만 달러 예치> (1면)
한겨레 <신정아씨, 청와대 2번 방문 / 작년 9월엔 “변실장 만나러”> (1면)
한국일보 <변양균, 신정아 교수 임용 관련 동국대 지원방안 논의 의혹> (1면)

언론의 ‘진실 파헤치기’ 노력엔 박수를 보내지만 …

▲ 중앙일보 9월13일자 1면.
언론의 이 같은 보도태도. 문제 있나. 없다. 아직 뚜렷한 물증이나 확실한 증언이 나오지 않아 ‘정황’만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이지만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 때문에라도 언론의 이 같은 ‘검증 의혹’ 제기는 충분히 정당성을 가진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관련한 의혹에서 보여준 언론의 ‘추적보도’와 ‘탐사보도’ 정신이 왜 유독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선 발휘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정치공방 위주의 ‘중계보도’ 자세를 취하거나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 ‘공을 들이고’ 있는 태도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 세계일보 9월13일자 1면.
심지어 이명박 의혹 검증에 주력하는 ‘다른’ 신문사의 보도에 ‘태클’을 거는 모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7월 경향신문이 이명박 부동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일부 보수신문이 보였던 태도는 단적인 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향신문 보도의 자료 출처 의혹을 제기했는데 동아 조선 중앙 등 보수신문들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이들 신문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데 일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경향신문 박래용 부장의 칼럼이 상기되는 이유

경향신문 박래용 전국부장이 7월7일자 2면에 이 같은 보수언론의 태도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한 것은 당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 부장은 7월7일자 2면 <기자메모-보수언론의 ‘황당한 취재검증’ 주장>에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들의 검증보도를 놓고 말이 많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경향신문의 ‘이명박 후보 처남 김재정씨 전국 47곳 땅 224만㎡ 매입’ 기사를 놓고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국가기관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정보’라며 마치 배후에 뭔가 있는 것처럼 국민의 시선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7월7일자 2면.
그는 “백번을 양보해 정치권의 당사자들은 상투적인 정치공세를 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일부 언론은 후보검증을 포기한 채 경향신문의 보도 경위를 문제 삼는 기사와 사설을 연일 싣고 있다”면서 “언론이 특정 정치세력과 합세해 후보검증 대신 언론검증을 하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한국 언론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한 쪽은 ‘파헤치고’ 한 쪽은 ‘무시하고’…언론 보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사안에 따라 언론보도의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이유를 아직 발견할 수가 없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 제2인자’라고 지칭될 정도로 ‘권력의 핵심실세’였고 때문에 좀더 방점을 찍었다라고 항변한다면 이런 반론에도 답을 해야 한다.

▲ 서울신문 9월13일자 5면.
경향신문이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부동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상대는 유력한 야당의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될 지도 모르는 인물에 대해 각종 의혹이 제기됐는데 언론이 검증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확인되지 않았다’거나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식의 해명도 말이 안된다. 이명박 부동산 의혹을 비롯해 관련 의혹들에 대한 ‘소극적 보도’에 그런 이유가 용납이 된다면 변양균-신정아 ‘의혹 사건’에도 그런 이유는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명심하자. 아직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명박 관련 의혹이나 변양균-신정아 관련 의혹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론의 추적 검증보도는 전자는 무시하고 후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왜일까. 하나의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지금과 같은 적극적 자세로 거의 모든 언론이 이명박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변양균-신정아 의혹에 ‘올인’하는 언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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