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직접 영상물을 만들어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유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병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진상규명국장은 2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국정원 문건에 ‘이제 그만 다 수습하고 평화롭게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영상을 제작해 일베 등 건전세력 사이트에 게재하자는 부분이 적시돼 있었다”고 밝혔다.

박 국장은 “이 일에 참여한 국정원 직원이 시인해서 국정원이 기획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국정원이 예산을 들여 영상을 만들었고 개인 아이디를 빌렸다고 말했다. 국정원 문건에 의하면 일주일 정도 영상을 게재했는데 조회수가 1만 회를 넘어 반응이 좋다는 보고서까지 작성했다”고 했다.

또한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을 사찰했다는 새로운 증거도 나왔다. 사참위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일일 동향 보고서 215건을 입수하고 국정원 직원 조사 등을 벌여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참위는 입수한 일일동향보고서 215건 가운데 48건이 유가족 사찰과 관련됐고, 참사 이튿날인 2014년 4월 17일 하루만 11건의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공개한 2014년 '유민아빠' 김영호 씨를 사찰하는 국정원 직원과 병원관계자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자료제공=사참위)

박 국장은 “국정원에 지속적으로 자료를 요구한 결과 보고서 일부를 받았다. 팽목항 참사 당시부터 직접 사찰하지 않으면 도저히 담길 수 없는 내용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서 작성자들은 조력자를 통해 받았다고 표현하지만 하루에 11건의 보고서가 나온다. 이는 외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작성하기엔 어려운 양”이라고 강조했다.

일일동향보고서 중에는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김영오 씨를 지속적으로 사찰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2014년 8월 20일 김 씨가 입원한 병원에 국정원 현장조사관이 찾아가 병원장을 만나는 등 동향을 살핀 장면이 병원 CCTV에 담겼다. 당시 김 씨와 변호사가 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해둔 CCTV 영상을 포렌식으로 복구하고 영상에 찍힌 국정원 직원이 본인이 맞다고 시인했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박 국장을 밝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수첩에 등장하는 메모에도 국정원의 사찰 정황이 담겼다. 김영오 씨가 입원했던 당시, 김 씨의 어머니는 고향인 정읍시의 공무원으로부터 호구조사에 가까운 질문을 받았다. 이를 전해들은 김 씨는 병원 원장과 주치의에 항의했는데 해당 내용이 국정원 보고서에 같은 날 그대로 기록된 것이다.

박 국장은 “처참한 상황”이라며 “국가의 힘을 이용해서 유가족을 상대로 폄훼하고 깎아내리고 온갖 가능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해 그들의 활동을 막으라는 취지로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게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유가족 사찰’ 관련 조사는 마무리하고 해당 자료들을 27일 오후 검찰 특수단에 제출했다. 박 국장은 “분명 윗선에서 지시가 이뤄졌을 텐데 수사가 아닌 조사로는 이를 밝혀내기에 한계가 있었다”며 “특수단에서 반드시 윗선에 누가 연결되어 있는지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참위는 남은 활동 기간 제출받은 증거 중 제출 과정에서 내용이 훼손됐거나 오염된 자료들을 다시 확인해보는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사참위는 오는 12월 11일 활동 기간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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