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한나라당이 합작해 집요하게 밀어붙인 수신료 3500원 인상안이다. 거의 끝까지 간 공작이다. 그러나 아뿔싸! 왜관철교를 쓰러뜨린 자연의 물길보다 더 무서운 여론의 물살이 모든 걸 휩쓸었다. 인상 시도를 한방에 좌초시켜버렸다. 방관하는 것처럼 보이던 여론의 반란. 사실 수신료 인상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던 대중들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최종 시점에 이르러, 이들은 ‘인상 반대, 인상안 거부!’의 뜻을 전율스럽게 드러낸다. 공영방송의 민주적 재구조화 없는 1000원의 추가적 탈취를 허락할 수 없다! 정치적 공적공간의 자율성 확보가 선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일방적 가계 약탈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러고자 음모하는 세력들은 모두 사회의 공적으로 규정한다!

이런 시청자 대중들의 일반의사가 순식간에 하나로 결집되었다. 무서운 기세로 인상 가도를 강타했고, 추진 세력을 뒤집었다. 이렇듯 표출된 대의 앞에 경악하지 않을 자 어디 있겠나? 신자유주의 정권이나 뉴라이트 한나라당, 무원칙적인 민주당과 기회주의인 KBS 모두 저 여론이라는 괴물 앞에 두 손 번쩍 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숨은 민심은 자연의 에너르기처럼 순식간에 위협적 양상으로 융기한다. 그 파괴적 폭력 앞에 버틸 자는 별로 없다. 승복이 생존의 길이고, 거부는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장 그렇고, 궁극적으로 그러하다. 결국 대중들이 수신료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지금과 같은 부정한 상태에서의, 전제조건의 선결 없는, 일방적 수신료 인상 시도는 안 된다는 직접 정치.

▲ 종합편성사업자로 선정된 조중동 사옥
수신료 인상안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정확한 정치적 판단이자 분명한 주권의 행사다. 공영방송의 가치보존을 전제하지 않은 가계부담 조치에 대한 집단 이의 제기. 같은 측면에서, 시청자 대중들은 소위 ‘미디어렙’이라는 전문적 수사로 위장된 광고판매대행체제 문제에 관해서도, 최소한의 정보나 지식만 주어진다면, 바로 지금 똑같이 의사판단의 시민권을 냉정하게 행사할 것이다. 새로 뜰 조중동 채널에 대해, 기존 지상파/공영 방송과 마찬가지로, 광고와 관련된 최소한의 사회적 규제 권리가 필요하다는 합의를 확실히 드러낼 것이다. 이른바 종합편성채널의, 그 어떤 차별적 특혜 없는, 미디어렙 포함 입법화에 대한 사회적 동조. 조중동방송이 가져올 신자유주의 광고자유화의 악몽을 거부하는 일반지성의 단호한 표현.

‘종편’에 대한 광고 탈규제의 특혜적 적용이 가져올 당장의 폐해는 물론이고 장기적인 효과까지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연합)방송의 자유로운 광고영업이 가져올 미디어생태계 파괴의 비용, 사회문화적 부담이 실로 막대하다는 점을 현명하게 읽어내는 탓이다. 현재로서는 “규제완화”를 빌미로 조중동방송을 의무위탁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지니는 문제점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방통위, 한나라당이 기존 지상파 방송과 차별되는 불공정 혜택을 종편에 주고자 한다는 의혹의 목소리가 높다. 당연한 비판이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수구/신자유주의 선전채널들의 광고 자유화가 과연 이들의 특혜적 성장에 도움 주는 데만 그칠 것인가? 인·민들의 의혹은 훨씬 더 깊이 뻗친다.

“규제완화”를 빌미로 조중동방송을 광고 의무위탁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방송(광고시장)의 패러다임에 심각한 연쇄 작용을 가져오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KBS와 MBC로 대표되는 공영방송, SBS와 지역 ‘민방’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규제완화를 자연스럽게, 궁극적으로 부추기게 되지 않나? 이게 한나라당-조중동-방송통신위원회의 삼각동맹이 추진하는 ‘종편’ 광고 자유화 시도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본질이 아닌가? 적절한 의심, 타당한 추측이다. 실제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편의 광고 자유화가 방송 전반의 탈규제화를 위한 초석임을 의미심장하게 흘린 바 있다. “종편에 주어진 자유 폭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상파 규제를 서서히 낮춰 전체적으로 (광고영업을) 자유화해야 한다”고 했던가?

이해관계가 별로 없을 <전자신문>의 6월 7일자 사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동아·중앙·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종편사업자는 쌍수를 들고, MBC·KBS·SBS 등 지상파 방송도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됐다." 이런 광고 자유화의 결과는 무엇일까? 광고영업과 광고수익을 위해, 공영과 사영의 구분 없이, 방송사들이 무한경쟁을 펼친다. 살인적 시청률경쟁에 의해, 프로그램의 선정성과 균질화가 심화된다. 진실추구의 저널리즘이 억압되고, 공적 토론의 장이 해체된다. 결과적으로 방송에 대한 (정치권력과 근친한) 자본권력의 지배가 완성된다. 지역방송은 물론이고, 취약 매체와 신문이 설 자리를 잃으며, 거대 미디어재벌에 의한 집중과 독점의 현상이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같이 구조화된다.

조중동방송을 미디어렙 체제에서 제외하고 광고 직접영업을 허용하면, 수구연합채널에 대한 최소한의 광고규제를 방기한다면, 10년 내에 반드시 초래할 전경이다. 방송의 전면적인 탈규제화와 상업화. 방송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될, 신자유주의 “자유화”의 환상적 경지. 광고와 그에 의해 지배되는 방송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자본 권력을 신화로써, 판타스마고리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재생산한다. 방송은 더 이상 사회적·공적 재산, 정치적 장치로 존속하지 못한다. 국가권력과 교호하는 자본권력 재생산의 기제로서 그 역할이 한정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고/자본에 의한 공영방송의 봉쇄와 미디어공공성의 폐쇄의 구조는 진보정치/정치진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치명적인 결과를 지금의 현명한 시청자들은, 지혜로운 인·민 대중들은 다행스럽게도 감지해낸다. 광고주들의 자유로운 공화국이 어찌 자유로운 시민들의 구속을 가져올지, 광고의 해방이 어떤 진리의 무단 억압을 초래할지, 날카롭게 간파해 버렸다. 그래서 여론이라는 무기를 다시 휘두르면서, 대의하는 운동사회와 여론매체,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정치권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조동동방송 위탁광고판매의 내용까지 정확히 포함하는 ‘미디어렙’ 입법화를 당장 마련하라! 그게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회의 남은 임무다. 그 추상같은 지시를 위반하는 간 큰 집단이 있는가? 여론의 대세를 거스르면, 반드시 그 힘에 의해 치명적으로 거꾸러질 텐데? 무서운 여론 통지문이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6월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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