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3시, 여야 원내대표는 회담을 갖고 KBS 수신료를 강행 처리한 문방위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우선, '매끄럽지 못한 의사진행에 유감'을 표명했다. 무리한 날치기였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향후에 '질의권을 충분히 보장하겠다' 방침도 밝혔다. 향후 'KBS 시청료 인상, 미디어 렙 등 방송관련 법안은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충분히 논의해서 처리'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이 한 발 아니 두 발 정도 물러선 셈이다.

어쩔 수 없었다. 여론의 반발이 너무 거세다. 조세 성격의 KBS 수신료를 일방적으로 무려 40%나 올리는 것을 그것도 날치기 한 한나라당이다. 쪽수를 앞세운 날치기가 당장엔 달콤할지 몰라도, 뒷감당의 부담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 연합뉴스
2명이 뻘쭘하게 됐다. 1차적으로는 날치기 처리를 주도한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 한선교 의원이다. 그는 논의 뒷 순위에 있던 수신료 인상안을 직권으로 앞 쪽으로 당겨 기립 찬성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날치기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친절하게 KBS의 카메라를 입회시켜 KBS에게 유독 친절한 선교 씨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방위 법안심사 소위는 8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의결정족수는 5인이다. 한나라당 의원은 한선교 의원을 포함해 4인 뿐이다. 1명이 반대했더라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시킬 수 없었다. 최소한 퇴장만 했더라도 됐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결국 찬성한 그 1명은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었다.

김창수 의원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난 4월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KBS 수신료 인상안의 한나라당 단독 처리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수신료 인상 선행조건으로 '△KBS 지배구조 개선과 광고 축소 내지 폐지 방안 제시 △KBS의 조직 정비와 경영합리화 및 구조조정 선행 △난시청 해소 및 재난방송 역할 강화 등 공적 책임 실천방안 마련 △수신료 통합 징수제도 폐지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불과 2개월 여 만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표변한 것이다.

▲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 ⓒ 연합뉴스
왜 그랬을까? 굳이 복잡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문제다. 그 2개월 동안 KBS는 집요하게 김창수 의원을 공략했다. 결국, 넘어간 것이다. 법안심사소위의 키를 쥐고 있는 김창수 의원에 대해 KBS는 집요한 로비를 가했고, KBS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김 의원이 이에 호응한 것이다. 말하자면, 김창수 의원은 공개적으로 '나는 KBS가 국민보다 무섭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제, 다시 수신료는 논의로 돌아왔다. 논의와 토론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리고 이 원리는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국회의원들의 합리적 판단과 소신으로 작동한다. 수신료 강행처리는 그 원리와 작동이 다 무너진 사건이었다. 다행히 여야 원내대표는 그걸 도로 회복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KBS를 위해 원리를 무너뜨린 한선교 의원과 KBS가 무서워 오작동을 일으킨 김창수 의원은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KBS의 로비가 민주주의보다 강력하고, 소신보다 우선하단 점이 확인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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