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제21대 총선 결과 지역구 여성 후보자 29명이 당선됐다. 역대 최대로 정치계의 유리천장이 낮아지고 있지만 이를 전하는 언론은 제자리걸음이다. 언론은 여성혐오발언으로 시청자의 질타를 받고, 여성 당선인의 배우자를 부각시켜 소비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앞서 15일 MBC는 개표방송 도중 여성혐오 발언 논란이 일어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MBC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의 경합을 소개하며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곧바로 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총선 후보간의 경쟁을 여성 간의 감정싸움으로 몰아가는 여성 혐오적 발언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오후 11시 50분경 성장경 앵커는 “서울 동작을 개표상황을 전해드리는 과정에서 사용된 표현이 여성혐오성 표현이라는 일부 시청자분들의 지적이 있었다”며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고민정 당선인의 "제가 시집을 잘 간 것 같다"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 (사진=네이버)

16일에는 “제가 시집을 잘 간 것 같다”는 고민정 서울 광진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인터뷰 기사가 쏟아졌다. 고 당선인은 당선 직후 "일하는 민생국회 만들 것"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지만 남편 응원에 집중한 보도가 비슷한 양으로 나왔다.

조선일보 <고민정 “제가 시집을 잘 가서 당선된 것 같다”>, 중앙일보 <고민정 “남편이 큰 힘…제가 하여튼 시집은 잘 간 것 같다”>, 파이낸셜뉴스 <고민정, 남편이 말없이 안아줘 “시집 잘 간 것 같아”>, 아시아경제 <“남편 조기영 시인, 말없이 안아줘”>, 서울신문 <오세훈 꺾은 고민정 “남편이 ‘고생했다’며 안아주더라”> 등이다.

이 같은 보도는 같은 날 아침 고 당선인이 인터뷰에 응한 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시작됐다. 노영희 변호사는 고 당선인에게 “선거기간 중간에 인터뷰를 하신 다음, 곧바로 남편분께서 인터뷰한 것이 나왔다. 저는 그때 아름다고 감동적인 서사를 잊을 수가 없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남편 분이 많이 힘이 됐을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고 당선인은 “가족이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면 어떤 후보도 이겨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제가 하여튼 시집은 잘 간 것 같다”고 답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현정 앵커는 “선거기간 동안 ‘내가 세상에서 훔친 유일한 시는 고민정이다’ 이런 표현을 해서 굉장히 화제가 됐었죠. 남편 조기영 시인은 뭐라고 하세요?”라고 묻자, 고 당선인은 “어제 단둘이 집에 들어와서 정말 고생 많았다고 안아주더라고요. 참 많은 과정들을 지나왔고 그런 시간들이 쭉 주마등처럼 흘러갔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김 앵커는 “그럼 집에 와서도 말없이 포옹(하면서) ‘고생했다’”고 강조하자 고 당선인은 “네”라고 답했다.

CBS는 같은 날 고민정 당선인 외에 김웅 서울송파구갑 당선인, 주호영 대구 수성구갑 당선인, 이수진 서울 동작구을 당선인을 인터뷰 했지만 누구에게도 배우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라디오 뉴스 제목 역시 <고민정 “남편 조기영 시인, 말없이 꼬옥 안아줬다”>로 뽑았다.

YTN은 오영환 경기 의정부시갑 당선인에게 부인인 김자인 선수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물었지만 인터뷰 제목은 <소방공무원 출신 첫 국회의원 오영환 "청년 정치인으로서 목소리 내겠다">였다. 고민정 당선인 제목은 <고민정 "힘이 된 남편, 제가 시집은 잘 간 것 같아요">였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질문도 적절치 않고 해당 답변을 부각시켜 소비하는 보도 행태도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신 처장은 “당선된 정치인 가족 중 고생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유독 여성 정치인에게 남성 배우자의 역할이나 관련된 일화를 질문하고 이를 부각하는 건 매우 편파적”이라며 “고민정 당선인에게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어떤 소신을 가질 것인지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사생활적인 부분을 제목으로 뽑아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처장은 언론과 더불어 여성 정치인들의 태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 처장은 “여성 정치인들도 주체적인 사고를 갖고 높은 성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언론의 무분별한 질문은 교정하고 소비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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