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국민의당 김근태 청년비례대표 후보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음원 사재기’ 가수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명단을 폭로했다. 가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는 건 물론 음원 차트를 조작했다는 회사 이름, 조작 방식까지 입에 담았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 입장을 발표했다. 음원 차트를 운영하는 회사 멜론 역시, 김근태 후보의 주장과 달리 서비스 가입자들의 아이디를 해킹당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은 순서가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당 측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길 것이라 밝혔다. 즉, 수사기관이 사실관계를 검토하기 전에 스스로 입수한 정보로 가수들 이름을 열거했다. 김근태 후보는 사실관계에 관해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했겠지만, 그건 공식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실이다. 수사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어떤 시급함이 있다면 사건의 실체에 관한 부분을 공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트 조작이 의심되는 가수들 명단을 폭로하는 게 그만큼 시간을 다투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오히려 만에 하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누명을 쓰는 피해자가 생긴다. 차트 조작의 실체에 관해서는 공표를 해서 수사를 촉구하더라도, 가수들 명단에 관해선 수사가 이뤄지기를 기다렸어야 하지 않나 싶다. 공당의 선거 후보자가 실행한 것이기에 부작용의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설령 수사 결과 거명된 가수들이 조작에 연루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결과와 별개로 과정 상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기자회견하는 김근태 국민의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김근태 후보 측 제공=연합뉴스]

음원 차트 조작은 어제오늘 논란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이후 꾸준히 의혹이 터졌고 공론화됐으며 조사가 착수된 적도 있다. 분명한 건 숱한 정황과 관계자들의 증언, 여론의 비판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혹의 빛깔은 짙어졌고, 이제 음원 차트는 이용자들의 선호 체계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신뢰성을 잃어간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차트 조작 세력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가장 크게 있다. 하지만 그 너머의 책임은 없는가. 이 문제가 꾸준히 공론화되었음에도 구조적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었다. 그 조치를 취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문화 생태계의 공정성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와 행정기관, 정치집단에 있다.

차트 조작에 관해 공적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2013년 가요 기획사들이 차트 조작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2018년에도 가요계 관계자들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문체부는 의혹에 오른 음원이 순위 패턴 상 다른 음원과 비교했을 때 혐의점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후 수사기관을 통해 이렇다 할 결론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차트 조작 의혹이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돌아오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문체부의 입장에 납득할 수 있었을까? 사회를 운영하고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이들이 문제를 풀지 않는 사이, 차트에서 음원이 흥행하는 현상 자체에 대한 불신이 물러가지 않는 땅거미처럼 들러붙었다.

불신의 대가는 조작으로 의혹을 사는 특정 가수뿐 아니라 모든 가수들에게 유탄으로 돌아갔다. “누구누구도 사재기하는 거 아니야?” “잘 모르는 가수 노래가 인기가 있네? 저것도 사재기겠지” 같은 조건반사를 부른다. 실제로 이런 막연한 의심에 이름이 오르내리자 억울함을 토로한 가수가 있었다. 정치가 논란을 중재하지 않는 동안, 특정 가수가 다른 가수들을 ‘사재기 가수’라 거명하며 음악 관계자 개인들 사이에 법적 분쟁이 벌어지는 지경까지 왔다. ‘음원 사재기’ 논란은 음원 차트라는 한정된 논점에 머물지 않게 됐다. 사람들 삶에서 제외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란 대상의 가치를 좀 먹고 있고 거기에 연결된 사회적 신뢰라는 자원을 파괴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조작된 세계- 음원 사재기인가? 바이럴 마케팅인가?' 편

문제가 깊어진 만큼 문제를 해소하려면 근치가 필요하다. ‘사재기 가수’ 몇 명을 적발하고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잘못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음악 산업의 질서에 대한 신뢰를 재건하려면, 구설수의 무대가 되어 온 차트를 개혁해야 한다. 실시간 순위라는 제도 자체가 차트의 유동성을 심화하고 경쟁을 과열시키는 데다, 시간 단위로 이용자가 몰리고 빠지는 틈을 노려 어떤 종류의 시도를 할 유인을 주는 면이 크다. 때문에 음악 관계자들이 차트가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 있다.

이게 완수되지 않으면 차트 순위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모습과 수법을 바꿔서 더 교묘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음원 사이트를 운영하는 대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다. 정치는 사회의 갈등에 개입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행위다. 커다란 이해관계가 사회의 공정성, 문화의 다양성 같은 가치와 드렁 칡처럼 얽혀 있을 때 그 뿌리를 더듬어야 하는 것이 정치집단이다. 선거철에 이르러 개별 가수들을 폭로하는 행동은 수사기관에 부담감을 지우고 화제를 일으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문제를 표피적인 부분에 부착시켜 센세이션한 가십으로 소비하게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행정기관과 정치집단이 그저 문제를 고발하는 제삼자가 아니라 지금껏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당사자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략 작년 연말부터 정치권에선 ‘유튜브 정치’ 혹은 ‘연예가 뉴스 정치’라고 부를 만한 동향이 확인됐다. 정치인들이 젊은이들 하위문화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 사회 공정성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는 연예가 이슈에 출두해 확성기를 들어주는 현상이다. 이삼십 대 사이에 넓게 퍼진 ‘흙수저’ 의식, 사회 공정성이 부재하다는 결핍감을 대변해주는 발언도 한다. 사회의 각 부분은 어떤 테마 아래서 결국 서로 연결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원 사재기’ 같은 문제가 불공정한 사회 자체는 아니다. 불공정한 사회의 일부로 파생된 문제이거나, 불공정한 사회를 투영하는 표상 역할을 하고 있다. 본질에서 파생된 문제에 문제의 본질을 지나치게 투영하면 본말이 뒤바뀐다.

개별적 문제엔 해당 분야의 특수성에 맞춘 개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거대 담론에 이른 수식어와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를 넘어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총선 이후에도 그것을 구현해 나갈 의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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