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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로 보는 인간 ‘종교’ 편- 뇌과학이 던진 도발적 정의, '신'은 인간이 창조했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4.08 20:05

[미디어스=이정희]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총괄자문 및 프리젠터로 참여한 <EBS 다큐 프라임 - 뇌로 보는 인간>은 1부 돈에서 시작하여 폭력, 예술, 섹스를 거쳐 5부 종교에 이르렀다.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5부 종교 편이 가장 논란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종교, 그 종교의 수장인 신에 대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한계적 인간이 만들어낸 신 

‘종교’ 편의 시작은 인도 갠지스 강가이다. 하루종일 시신이 불타오르는 곳, 사람들은 이곳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시신을 화장한 후 갠지스 강에 그 유골의 가루를 뿌리면 그의 죄가 사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버린 영혼이 다른 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도인들의 생각은 ‘육체는 헛되지만 존재는 영원하다’는 힌두교에서 비롯된다. 종교를 가진, 신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여행의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5부 ‘종교’ 편

바로 그 ‘죽음’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데서 '종교'가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물론 죽은 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명료한 대답도 있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사람들은 천국, 극락세계, 환생 등으로 존재의 영생을 믿었다.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을까? 과학적으로 접근해 본다. 1987년 죽은 멜린다의 영혼이 남아있는 집으로 유명한 곳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는 창밖에 어른거리는 멜린다의 환영이 사실은 방문객 자동차에 비친 손전등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처럼, 초자연적인 많은 것들이 상상력이나 뇌가 작동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걸까? 임사 체험을 한 대다수 사람들이 색과 빛이 화려하게 펼쳐진 천국을 봤다거나, 터널을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서로 비슷하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이유를 든다. 자연법칙에 따라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상대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불가지론을 '초월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초월적인 존재를 믿는 영역이 뇌에 실재할까? 이를 위해 마이클 퍼싱어 교수가 개발한 뇌의 측두엽을 자극하는 장치를 활용한다. 정재승 교수 본인을 비롯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측두엽이 자극을 받자, 붕 뜬 상태에서 옆에 누가 다가와 속삭이는 듯했다거나,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등 접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에 따라 학자들은 신의 존재가 뇌가 자극을 받아 생기는 생리적 현상이라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측두엽에 대한 이견도 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다양한 종교 수행자 4~500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측두엽 자체보다는 마치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 뇌의 여러 부분이 연결되듯이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반론을 편다. 즉 특정 부분의 자극이 아니라 일상생활과도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총체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의 모습은?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5부 ‘종교’ 편

왜 종교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재승 교수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예측한다. 수렵채집 시절의 인간은 물가에 놓인 어린아이와도 같은 신세였다. 그래서 인간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연한 작은 사건에서도 원인을 추측해내는 독특한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바구니 앞에서 피리를 부는 노인을 본 소년이 바구니 속에 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도망치듯, 인간은 설사 그 판단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의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겁쟁이 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겁쟁이 뇌'는 자신들이 세상에 대해 가진 의문을 풀어줄 존재가 필요했고, 여기서 '신'을 창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양 과학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여기에 인간의 패턴성을 더한다. 의미 없는 무늬에서 어떤 형상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인간 뇌의 능력은 불규칙한 패턴을 가진 자연, 그 뒤에 의도를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를 유추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적, 합리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 뇌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염병, 재난, 질병 등 인류에게 닥친 불가항력적인 제반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행위자'로서 신을 창조했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로써 그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어떤 모습일까? 인지과학자 구형찬 교수와 종교학자 심형준 교수는 2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6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이 어떻게 신을 기억하는가’에 대해 실험한다. 

신의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전지전능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조물주. 그러나 실험 참가자들이 기억하는 신은 뜻밖에도 이곳에도 저곳에도 임하는 능력자라기보다는, 마치 사람처럼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며, 때로는 화를 내고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적'인 존재다. 들려준 이야기 속의 공백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으로 채워 넣는다. 즉, 사람들은 신을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힌두교 칼리 여신의 팔이 여러 개인 게 하나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사람들의 자의적 해석처럼, 사람들은 신을 인간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냈다.

과학이 해주지 못하는 위로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5부 ‘종교’ 편

그렇다면 만들어진 신은 인간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까? 가장 극단적인 종교 의례, 신을 경배키 위해 온 몸에 바늘을 꽂는 모리셔스의 의식을 통해 알아본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그 고통스러운 종교 의례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은 심박수와 호흡이 동일하게 고양되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종교 의례, 700도가 넘는 나무 장작의 재 위를 다른 사람을 업고 뛰는 의식. 놀랍게도 이 의식에서 뛰는 사람이나 업히는 사람이나, 심지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의 심박수가 같았다고 한다. 즉, 이러한 집단적 헌신을 통해 사람들은 동일한 심박수, 즉 ‘일체감’의 경험을 얻는다. 무려 2억 명이 50일에 걸쳐 알라하바드로 신을 찾아 떠나는 힌두교 축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희열도 다르지 않다. 

종교, 그리고 신은 위안과 소속감을 준다. 과학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종교는 인간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말한다. 설사, 지금의 신이 혹은 종교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또 다른 '믿음'의 대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오랫동안 배타적이고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던 페사후 아이젠은 그 극단주의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천 명의 가족이 있는 것 같은 든든한 소속감을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소속감은 규율을 잘 따를 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예술과 문화 등 또 다른 공통분모가 만들어지는 현대 사회의 다른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5부 ‘종교’ 편

‘종교는 삶의 지표이다. 아니다. 유용하지 않다.’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믿음과 논거는 평행선을 이룬다. 인간이 신을 만든 과학적 논거가 진행되는 한편에서, 내림굿을 받고 이제 막 새롭게 신을 받들게 된 애기무당의 서사가 펼쳐진다. 몸도 너무 아프고,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던 그녀는 살고 싶어서 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통곡하고 작두를 오르던 그녀는 내림굿이 끝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이제야 속이 편해졌다며 선배 무당에게 기댄다.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한편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의지가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학의 세계가 도래하고, 학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종교의 종말을 점쳤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세상은 뜻밖에도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위태로워진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 모든 ‘불확실성’을 잠재워 줄 절대자를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았다. 

<다큐 프라임>에서 보여준 뇌의 현상으로서, 진화의 결과물로서 종교는 명확했다. 하지만 그 명확함이 우리에게 어떤 '앎'을 줄지언정 '위로'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 역시 명확하다. 가슴 떨리는 일체감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과학은 결국 떨리는 가슴의 종교 앞에서 그저 한낱 명제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한계적 인간이 탄생시킨 진화의 결과물. 아마도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래 내내 과학과 평행선을 유지하며 갈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의 불합리한 혼재,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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