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도무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는 선거이다. 거대양당 홍보의 방점은 오로지 비례정당을 어떻게 지지하게 만들 것이냐에 찍혀 있다. 이른바 ‘쌍둥이 버스’ 논란이 그렇다. 서로 간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도록 한 선거관리위원회 입장에선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선관위의 지적에 대해 “1과 5를 떼어 놓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한 여당의 항변은 기가 막힌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들은 지지층 표를 나눠 가지는 게 필연이라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 열린민주당의 정봉주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보면 이건 마치 김어준 대 정봉주의 대결 같다. 우리 유권자들은 기껏 이런 기준으로 어느 정당에 내 표를 던질지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난처하다.

열린민주당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중도층을 의식해 ‘조국 문제’를 덮어놓으려던 여당의 전략은 틀어졌다. 본인이 속한 미래통합당을 자꾸만 민주당과 헛갈리고야 마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조국이냐 경제냐의 선거”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거쳐 경제로 이어지는 이슈의 흐름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로까지 연결하는 모양새다. 지금 보수야당의 입장에선 적어도 공학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구도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조국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데다 열린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이 ‘작전’을 말하고, 이어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면서 선거 이후 조국 전 장관과 검찰개혁 문제는 다시 메인 정치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을 두고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했는데 온통 이런 식이니 서글픈 감정이 생긴다.

이 와중에 그나마 정책논쟁을 할 만한 공간이 열린 건 다행이다. 코로나19가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일으켜 국가가 돈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덕분이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또다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득 하위 70%를 판단하는 기준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아파트를 산 친구는 지원 대상이 됐는데 그보다 가난한 자신은 빠졌다는 식의 불평 사례가 공적 지면에도 올라와 있다.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야심차게 “1인당 50만원”을 꺼낸 것은 이런 배경이 있어서일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25조원 가량의 재원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을 통해 올해 본예선 512조원의 항목을 변경하는 걸로 충당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야당의 이런 제안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 정부 여당이 실질적인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본다. 받아들일만 하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신세돈 공동선대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 앞에서 '우한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대국민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정부 여당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예산 항목을 변경하고 2차 추경을 편성하면 미래통합당은 이에 동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못 미더운 게 사실이다.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재정확대에 대해 갈지자 행보를 해왔다. 처음에는 선거를 앞두고 돈풀기는 안 된다고 했다가 신세돈 교수를 영입한 이후에는 40조원의 국민채권 발행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검토 가능성을 언급하자 40조 얘기는 온데간데 없어졌고, 김종인 위원장이 등장해 ‘100조원’을 꺼냈다.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솔깃하지만 결국 선거 끝나고 국회를 다시 구성해 지출 규모와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당장 돈을 쓸 수 있는 방안은 아닌 셈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김종인 위원장은 국회를 기다리지 못하겠으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하면 될 것 아니냐며 왜 가르쳐주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특유의 대갈(大喝)호령을 선보였다.

미래통합당은 긴급재난지원에 대해서도 선거를 겨냥한 매표 행위라면서 줄 거면 다 주는 게 낫다며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도 실효적으로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해왔다. 돈을 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메시지였다. 이번에 ‘1인당 50만원’이 나오면서 갈지자의 획은 또 한 번 반대방향으로 그어진 듯한 느낌이다.

미래통합당이 재정확대라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강남권 여론이라는 좀 더 뻔한 문제를 곁눈질 하고 있다.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연일 종부세 완화를 언급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1주택자가 별다른 수입이 없는데 종부세 중과대상이 되는 건 불합리하므로 현재의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공시가격 현실화 등으로 일부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1주택자의 경우엔 여러 예외로 할 수 있는 조건도 있고 종부세 부과 대상에 속하더라도 세율이 높지 않은데다 전년도 대비 일정 비율 이상 세액을 늘리지 않도록 하는 규정도 있어 실제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강남권 일부 초고가주택 소유자의 경우일 텐데, 그렇다면 이낙연 전 총리 등이 겨냥하는 계층도 바로 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판세는 더불어민주당이 전반적으로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개별 지역구 상황을 보면 여전히 박빙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미래통합당이 확실한 우위를 기대해볼만한 곳은 서울 강남권 정도이다. 만일 여당이 이 지역에서 보수야당의 기세를 꺾어 놓을 수 있다면 수도권 선거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 트라우마’도 있고 하니 여당으로서는 종부세 완화 카드가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

4ㆍ15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가 5일 오후 종로구 무악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기명 채권 발행의 경우는 이 문제보다는 덜 정치적인 것으로 보인다. 무기명 채권 발행을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논리는 이렇다. 재정확대는 결국 대규모 국채 발행을 수반할 것인데 이는 자금 쏠림과 회사채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므로 고액자산가들의 자금을 빨아들일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기명 채권은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탈루해 부를 대물림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일부 사건에서 비자금 조성과 돈 세탁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실질적 피해를 입는 소상공인이나 불안정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종부세 완화나 무기명 채권 발행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정부 여당이 ‘우리편’이라는 감각보다는 역시 다른 세계의 정치적 산물이라는 감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남의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종부세를 만든 것도, 결과적으로 종부세 과세 대상 주택 수를 늘린 것도 이 정권과 궤를 같이 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종부세 완화 등이 그간 스스로가 주장해 온 정체성에는 맞는 것인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미래통합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규칙 이종격투기 같은 선거에 모처럼 찾아온 정책적 논쟁의 기회를 표에 도움이 되느냐의 기준 하나로만 판단해 날려버리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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