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흥미로운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K리그 13라운드에서 맞대결을 갖기 전, FC 서울 최용수 감독대행과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이 입심 대결을 펼친 것입니다. 최 감독대행이 “독수리가 황새를 이기지 않느냐”며 포문을 열자 황 감독은 “강하다고 다 이기는 건 아니다. 황새의 우아함에도 강함이 숨어 있다”며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1990년대를 풍미한 공격수 출신으로서 이들의 맞대결은 입심 대결만큼이나 경기 전부터 많은 흥미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4만 4358명의 관중이 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더 많은 관중을 불러들일 만한 소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음에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탄탄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는데 아직은 좀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13라운드에서 관심을 모을 만했던 경기는 포항-서울 말고도 많았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코칭스태프로 오랫동안 호흡했던 허정무 감독(인천)과 정해성 감독(전남), 현재 투병중인 신영록의 전 소속팀 수원 삼성과 현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과 대구 FC의 대결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팀을 지지하는 서포터와 몇몇 팬들만 관심을 가질 뿐 다수의 축구팬들이 이런 재미있는 사연이 있음을 인지한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소재들조차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위기를 맞이한 K리그가 '스토리'라는 즐길거리를 잘 활용한다면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0년 역사를 바라보는 K리그에 지역, 감독, 선수, 승부 등 끄집어낼 만한 흥밋거리들은 분명히 많습니다. 잠재돼 있는 흥미요소들을 잘 끄집어내고, 잘 다듬어서 반듯한 상품으로 내놓는 것은 K리그 구단, 프로축구연맹 등 축구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 위상에 걸맞은 스토리로 흥하는 K리그가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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