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흥미로운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K리그 13라운드에서 맞대결을 갖기 전, FC 서울 최용수 감독대행과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이 입심 대결을 펼친 것입니다. 최 감독대행이 “독수리가 황새를 이기지 않느냐”며 포문을 열자 황 감독은 “강하다고 다 이기는 건 아니다. 황새의 우아함에도 강함이 숨어 있다”며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1990년대를 풍미한 공격수 출신으로서 이들의 맞대결은 입심 대결만큼이나 경기 전부터 많은 흥미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는 4만 4358명의 관중이 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습니다.

▲ K리그 13라운드 서울-포항 경기 장면. 많은 관중들이 들어차 있다. (사진: 김지한)
최근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K리그지만 재미없다는 편견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경기마다 많은 골이 터지고 순위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관중도 많이 늘었고, 승부조작 사태 후에도 비교적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더 많은 관중을 불러들일 만한 소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음에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탄탄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는데 아직은 좀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13라운드에서 관심을 모을 만했던 경기는 포항-서울 말고도 많았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코칭스태프로 오랫동안 호흡했던 허정무 감독(인천)과 정해성 감독(전남), 현재 투병중인 신영록의 전 소속팀 수원 삼성과 현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과 대구 FC의 대결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팀을 지지하는 서포터와 몇몇 팬들만 관심을 가질 뿐 다수의 축구팬들이 이런 재미있는 사연이 있음을 인지한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소재들조차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과 FC서울 최용수 감독대행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포항-서울, 최용수-황선홍의 맞대결 스토리는 많은 것을 시사했습니다. K리그를 대표하는 두 명문 구단, 그리고 한국 축구 최고 공격수의 대결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해 구단 뿐 아니라 프로축구연맹까지 나서 대대적으로 알리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도한 결과, 흥행 대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밖에도 이미 FC 서울과 수원 삼성,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의 ‘더비 매치’는 K리그 뿐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토리로 자리잡았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스토리가 살아 숨 쉬며 많은 흥행을 몰고 올 수 있는 K리그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기를 맞이한 K리그가 '스토리'라는 즐길거리를 잘 활용한다면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0년 역사를 바라보는 K리그에 지역, 감독, 선수, 승부 등 끄집어낼 만한 흥밋거리들은 분명히 많습니다. 잠재돼 있는 흥미요소들을 잘 끄집어내고, 잘 다듬어서 반듯한 상품으로 내놓는 것은 K리그 구단, 프로축구연맹 등 축구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 위상에 걸맞은 스토리로 흥하는 K리그가 돼야 하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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