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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씨 방통위원장 안된다결국 이명박 정권에 부메랑이 될 것
신학림 기자 | 승인 2008.02.27 16:46

2003년 4월 2일.

이 날은 많은 국민과 단체들의 반대와 시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서 관철한 날이었다. 국회 국정연설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언론·시민단체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노 대통령과 몇몇 단체 대표들이 원탁의자에 둘러앉았다. 참석자는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 민주언론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언론노조 KBS본부 김영삼 위원장, 같은 조직의 공정방송추진위원회(약칭 공방위) 김현석 간사(현 기자협회 KBS 지회장) 그리고 필자(당시 언론노조 위원장) 등 5명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언론으로 위장한 범죄집단이나 다름없는 족벌신문들과 한나라당이 지난 5년 내내 ‘친 노무현 단체’라고 근거없는 비방을 퍼부어대던 단체 대표들이다.

서동구 전 KBS사장이 '낙마'한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대로라면, 이날 만남은 화기애애했어야 옳다. 그러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둥 마는 둥 하고 각자 지정된 자리를 잡았다. 팽팽한 긴장과 적막이 흘렀다.

 

   
  ▲ 2003년 4월3일자 한국일보 4면.  
 

먼저 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노조에서 바꾸라면 바꾸어야지요! 바꾸겠습니다!”

노 대통령이 바꾸겠다고 한 사람은 2002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언론고문’이란 직책으로 자문을 몇 번 한 정도인 서동구 KBS 사장(현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장)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 소속 조합원들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출근하는 승용차마저 조합원들의 육탄공세로 봉쇄당하자 사태가 심상찮다고 판단한 서 사장이 노 대통령과 언론시민단체 대표들의 이날 만남이 있기 직전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다.

KBS 사장은 KBS 이사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토록 되어 있다. 노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뒤인 3월 25일 숱한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동구씨를 KBS 사장에 임명하자마자 반발은 즉각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날 자리에 앉자마자 노 대통령이 서 사장을 교체하겠다고 먼저 말한 것은 순전히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술이었음이 금세 드러났다. 노 대통령의 진짜 의도는 서 사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만남 자체가 이뤄진 배경도 그랬다. 노 대통령이 서 사장을 진짜 바꿀 요량이었다면, 서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서 사장 절대 불가’를 외치는 단체 대표들을 노 대통령이 먼저 보자고 한 것 자체가 ‘충분히 설득해 낼 자신이 있다’는 심산에서 나온 것이었음이 명백했다. 서로 예의는 갖췄지만 한 치도 양보 없는 살벌한 공방이 계속됐다.

논쟁의 요지는 이랬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KBS 사장을 노동조합이 못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이었고, 단체 대표들은 “서동구 사장이 인품이나 능력 등 어느 모로 보나 존경받는 언론인임에는 틀림없으나, 노 대통령(후보)의 언론고문이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공영방송인 KBS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 KBS사장이 되면 '편파언론' 낙인 찍힐 것"

대통령 후보의 (언론)고문이든 다른 직책이든, 측근이든 아니든,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이 KBS 사장이 되는 순간부터 'KBS가 내 보내는 모든 프로그램은 노 대통령의 언론고문을 지낸 사람이 사장으로 만든 방송’이라는 낙인을 찍어 족벌신문과 한나라당 등이 5년 내내 공격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노 대통령이 담배를 계속 꺼내 들었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필자는 열심히 불을 붙였다. 노 대통령이 와인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이 와인을 몇 잔 들이키자 음식을 나르던 비서관이 와인을 ‘그만 하시라’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막무가내로 더 가지고 올 것을 지시했다.

중간에 노 대통령이 뜻하지 않은 육두문자를 쓰기도 했다. 차마 옮기기 어려운 표현이었다.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공방은 끝났다. 끝내 내키지 않았겠지만 노 대통령이 마지못해 생각을 바꾼 듯 했다. 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무거운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서 집무실로 향했다.

 

   
  ▲ 조선일보 2월27일자 8면.  
 

문을 나서다가 갑자기 돌아섰다. 그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던 참석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저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이었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시작해 90년대 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방송노동자들의 방송민주화 투쟁은 “땡전 뉴스(뉴스가 시작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혹은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로 상징되는 방송의 권력에 대한 시녀 노릇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의 방송’에서 궁극적으로 방송의 주인인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려 놓자는, 줄기차고 집요한 투쟁이 이어졌다. (불법) 파업과 연행, 폭행, 해고, 투옥으로 이어지는 처절한 투쟁이었으나 우리 방송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바라던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이뤄냈다. 육탄전을 포함한 결사 투쟁으로 KBS 서동구 사장을 교체토록 한 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독립을 지켜낸 투쟁의 휘날레이자 상징이었다.

그런데 다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 노골화하는 이명박 정부

이번에는 KBS 사장 정도가 아니라, 방송과 통신의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후견인(mentor)이자 ‘측근 중의 측근,’ ‘고문 중의 고문’인 최시중 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이 내정되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신설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모든 방송(사)과 통신(사)을 감시, 감독하는 유일의 기구가 된다. KBS 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리다. 모든 방송사와 통신사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기구다.

위원회 구성도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2명을, 여당이 1명 등 여권이 3명을 임명하고 야당이 2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지금의 방송위원회처럼 독립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직속 기구다. 위원장의 권한과 의사결정방식도 합의제 방식인 지금의 방송위원회와는 완전히 반대의 독임제 결정 방식이다. 다수결로 하더라도 여당이 무조건 과반을 차지한다.

방송과 통신 등 언론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그래서 언론노조와 한국방송프로듀서 연합회 등 방송 현업단체들은 ‘방송(독립)은 죽었다’ 고 선언한다.
 
이제 방송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에 경고한다.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최시중 씨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강행은 이명박 정권의 조기 종말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신학림 기자  mediashin@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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