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 번 6월은 '월드컵의 계절'입니다. 축구공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즐기면서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시기가 바로 월드컵이 열릴 때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1986년 이후 일곱 번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그 가운데 직접 안방에서 치른 200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올라 행복한 6월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2002년의 영웅들' 히딩크 감독이 이끈 23명의 태극전사가 있었습니다. 이운재, 현영민, 최성용, 최진철, 김남일, 유상철, 김태영, 설기현, 이영표, 최용수, 김병지, 이을용, 이천수, 이민성, 윤정환, 황선홍, 안정환, 홍명보, 박지성, 송종국, 최은성, 최태욱, 차두리, 그리고 거스 히딩크 감독, 핌 베어벡,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 등 2002년 월드컵을 빛낸 영웅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뤄내며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히딩크호의 기적에 많은 축구팬, 아니 전 국민은 열광했고,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 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꺾은 뒤 좋아하는 이영표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2년의 영웅들이 이후 모두 잘 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정도가 유럽에 진출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홍명보, 황선홍은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2000년대 중후반, 나란히 지도자 길에 접어들어 연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최진철, 유상철, 윤정환, 최성용 등 비교적 최근 지도자 무대에 뛰어든 영웅도 있었고, 김병지, 최은성, 이을용, 현영민, 송종국, 최태욱 등 선수 생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반면 이천수는 어렵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일본 J리그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고, 설기현, 안정환 등도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다 한국, 중국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김남일은 러시아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패널티킥을 내주는 '중대한 실수'로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희비는 엇갈렸지만 그래도 이들이 있었기에 2002년은 행복했고, 한국 축구도 신바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뤄낸 성과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고, 한국 축구가 보다 더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됐습니다. 세계 축구는 한국 축구를 주목하면서 많은 유망한 선수를 '모셔가려' 하고 있고, K리그 역시 최근의 아픔이 있기는 했지만 아시아 대표 리그로 우뚝 서며 아시아 각 대표팀 선수들이 부러워하는 리그가 됐습니다. 또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매년마다 한국을 찾아 다양한 자선 사업을 벌이거나 한국 축구에 조언을 하며 꾸준하게 한국과의 의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명장의 꾸준한 관심은 한국 축구에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난 8일(한국시각), 브라질에서는 축구 스타 호나우두의 은퇴 경기가 열렸습니다. 199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하고 2002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던 호나우두의 은퇴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현역 마지막 경기를 실제 대표팀 A매치 경기로 치르자 팬들은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조광래호 출범 첫 경기에서도 대표팀 No.1 골키퍼 이운재의 은퇴식을 대표팀 A매치로 치렀을 때 많은 팬들은 응원하며 그의 마지막 태극마크 단 모습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은퇴 경기 외에도 자선 축구, 기념 경기 같은 이벤트성 경기는 선수나 팬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해당 경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돼왔습니다.

▲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골든골을 넣은 뒤 기뻐하는 안정환
벌써 내년이면 2002년 월드컵이 열린 지 10년이 됩니다. 2002년의 쾌거를 잊어야 한국 축구가 산다는 말도 있지만 2002년의 추억은 한국 축구, 나아가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고, 한국 축구 발전에 큰 힘이 된 사실은 한국에 있는 팬들,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월드컵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옛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를 기념하는 경기를 치른다면 아마 한국 축구 역사상 꽤 흥미진진한 매치가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 자리를 통해 안정환, 김남일, 이영표 등 이미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 대한 은퇴식도 성대하게 마련한다면 꽤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한국 축구의 옛 영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앞으로의 영광을 위해 다짐하는 자리로 만들어 기념할 만한 경기를 치른다면 월드컵만큼이나 한국 축구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경기로 기억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최근 스포츠 영웅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려는 국가 차원의 뜻과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002년의 영웅이 해낸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해낸 성과가 점점 잊혀져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축구계가 이들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다시 떠오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 월드컵을 치른 지 1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를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되돌아보면서 한국 축구 발전에 더욱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탐색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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