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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파랑새는 없었다, 르네 젤위거 혼신의 연기로 빚어낸 주디 갈란드의 삶[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4.01 14:35

[미디어스=이정희] 영화 <주디>를 보러 잠실에 위치한 영화관을 찾았다. 올해 석촌호수에 만개한 벚꽃은 조용히 홀로 피다 질 터이다. 꽃이야 사람들이 보러 와주건 말건 상관없이 철이 되어 피고 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만든 영화가 시절을 잘못 만나 고생 중이다. 좌석을 퐁당퐁당 배치했어도 마스크를 풀지 않은 채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시절, 그마저도 상영관에 10명이 채 안 된다. 그래서 더, 스타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싶었던 주디 갈란드의 삶이 애달프다. 

인간이기 이전에 스타여야

영화 <주디> 스틸 이미지

202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의 연기에 찬탄한다. 연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 작품의 호아킨 피닉스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앙상하게 살을 뺀 그의 몸이 보여주는 '조커'의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오랜 약물 중독으로 잠도, 먹는 것도 더는 그 무엇도 사람답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여배우. <조커> 속 호아킨 피닉스만큼 앙상하게 마른 몸. 도무지 에너지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듯 어깨는 푹 꺾이고, 두 팔은 흐느적흐느적, 바람이 불면 금세 날아가버릴 것 같은 걸음걸이로 르네 젤위거의 주디는 등장한다. 세팅된 머리, 긴 속눈썹의 짙은 마스카라로 도배된 얼굴은 안타깝게도 숨길 수 없는 나이와 함께 아이들과 하룻밤 잘 곳이 없어 전전하는 늙은 여배우의 현실을 드러낸다. 그곳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그 여배우는 없다. 남우주연상이 당연했듯,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몫이 당연해지는 순간이다. 

아이를 ‘내 몸 밖에 있는 심장’이라며 어떻게서든 내 아이들은 내가 키우고 싶다는 엄마. 하지만 당장 있던 호텔에서도 쫓겨나는 처지의 엄마는 결국 두 아이들을 전남편에게 맡기고 그녀를 부르는 무대가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그녀가 원하는 건 평범한 삶이지만, 결국 그녀가 돌아갈 곳은 무대밖에 없는 이 '씬'으로 영화는 주디 갈란드의 삶을 정의한다. 

영화 <주디>는 주디 갈란드가 죽기 6개월 전까지 섰던 마지막 영국에서의 무대 공연과, <오즈의 마법사>로 세상에 그녀의 이름을 알리던 그 시절의 주디를 교차하며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에 잠식당한 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잠을 자고 싶어요', '햄버거 한 입만이라도 먹고 싶어요', '휴식시간을 지켜주세요'라던 10대의 주디에게 제작사 대표는 선택을 강요한다. 말이 선택이지 ‘너가 아니라도 너를 대체할 너 또래 아이들은 많다’는 대표의 말에, ‘당장 스케줄에 따르기 싫으면 이 문으로 나가라’는 대표의 말에 누가 어렵사리 얻은 주인공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갈 수 있었을까. 

2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던 주디 갈란드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전횡에 가까운 양육을 통해 아역 배우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 등을 통해 '아이돌'과 같은 청춘스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스타'의 대가는 가혹했다. 스크린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제작사는 음식 대신, 잠 대신, 휴식 대신 ‘약’을 먹였다. 결국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게 될 정도로. 

영화 <주디> 스틸 이미지

청소년 시절 성장에 필요한 음식물도, 멘탈도 챙기지 못한 주디는 '스타'가 되었지만, 자살 시도와 약물 중독,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점점 입지가 좁아져 간다. 할리우드 산업 시스템의 그늘은 온전히 주디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어 갔지만, 그녀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만 미국 그 어느 곳에서도 더이상 그녀를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가게 된 영국. 여전히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정한 몸짓으로 흐르적거리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살기 위해서 주디는 무대에 선다. 무대 공포증으로 첫 무대조차 설 수 없을 뻔한 해프닝을 만들지만, 떠밀리듯 나선 무대에서 여전히 '주디는 주디'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엔터테이너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영국 데뷔 무대. 분장실에는 꽃다발이 넘치고 기사는 호평 일색이지만, 정작 무대를 내려온 분장실의 주디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그 무엇도 그녀를 위로해 줄 것이 없는 것 같은. 멋진 노래 뒤에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관객석의 박수와 찬사. 하지만 그런 인사를 받고 주디는 말한다. 저는 무대에서만 주디 갈란드라고.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처연하게 스러져 간 스타의 삶 

영화 <주디> 스틸 이미지

하지만, 세상은 주디를 '인간'이기 이전에 '스타'로 소비한다. 부모도 제작사도 그리고 네 번의 결혼으로 만난 남자들조차도. 자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의 길이 눈앞에 당장이라도 보이는 듯',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며 결혼하자는 주디. 늘 내 편이 되는 누군가를 갈구하지만 결국 그녀는 '혼자' 남는다. 다시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약과 술에 의지하는 악순환. 그리고 스스로 견뎌내지 못하는 삶의 무게는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회마저 앗아간다. 비록 무대를, 그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여전히 좋아했지만, 그녀의 자존감 낮은 멘탈과 술과 약물에 지친 육체는 더이상 무대를 감당할 수 없다.

종종 우리 시대의 '청춘스타'였던 아이돌들의 추레한 내리막길을 기사로 접하게 된다. 영화 속 주디나 우리 시대 아이돌들이나, 미처 자신들의 인격과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전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스타'로서 소비되어 마모되고 만 존재들이다. 늘 자신을 빼앗기며 살아왔던 그들은 '모든 걱정이 레몬사탕처럼 녹아버리는' 달콤한 그 무엇을 꿈꾼다. 하지만 영화 속 주디의 말처럼, 저 산 너머에 있는 무지개를 좇아 걸어가는 게 전부인 것이 어쩌면 인생인 것처럼, 제아무리 그들의 삶이 희생의 결과물이었을지라도, 결국 삶의 무게는 온전히 그 '스타' 당사자의 몫이다.

영화 <주디>는 어린 시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희생자가 된 주디, 그 가혹한 대가를 전 생애에 걸쳐 짊어진 주디 갈란드의 모습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다. 무대 위의 스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사랑받고 싶었지만 끝내 내 편을 얻기 어려웠던 한 여성의 모습이 만인의 스타였던 무대 위의 주디와 대비되며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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