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6.10동맹 휴업을 결정하기 위해 총투표를 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등록금'이 눈물이라면, 분명 어딘가에 그 '씨앗'이 있다.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고 있는 이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언급하고 있는 파퓰리즘이란 결국 '씨앗'은 그냥 둔 채 눈물만 닦아주려 한단 얘기라고 이해하면 한층 상식적일 테다.

등록금이 폭등세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2년 이후다. 그렇다면, 2002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월드컵, 물론 있었다. 그 열정의 사회학이 지배하던 때에, 정부는 조용히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등록금 자율화 권한을 부여받은 국공립대는 절대적으로 싼 등록금을 상대적으로 싼 등록금으로 바꿔치기 했다. 2011년 현재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2002년과 비교하면 그 상승률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그렇다. 사회적 소득 수준에 비해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게 된 것은 대학들이 마음대로 그 고지서의 숫자를 써넣을 수 있게 된 이후의 문제다. 이걸 당시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대학의 자율성'이라고 불렀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실제, 대학의 경쟁력이 얼마나 강화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 10여년 사이 비인기 학과는 속속 폐지됐고, 실용과 스펙의 광풍이 대학을 덮치며 이 땅의 모든 대학생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집단이 됐단 점이다. 그렇게 무한한 경쟁 끝에 탄생한 공무원들이 관료 집단의 실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같지도 않다.

모든 것이 나빠졌다. 대학을 자율적 경쟁의 장으로 내몰아 버린 것은 틀렸다. 교육의 공공재적 성격은 현격히 훼손됐고, 나름 진지했던 학문의 열정은 비싼 등록금을 회수하기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락했다. 등록금의 문제는 공공 영역을 민영화, 시장화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험지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당장에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휘발성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다 근원적인 처방은 대학에 대한 공적 통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최소한 2002년 수준으로, 장기적으로는 모든 대학의 등록금 결정권을 다시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찬성한다는 사람이 90%에 이르지만,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50%를 밑돈다. 왜 그럴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학을 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도 장사인데, 등록금 장사를 포기할 리 없다는 인식이다. 여기서 처방이, 사회적 합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실제 기업이 아니게 해야 한다.

이건, 당장에 등록금 액수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대학에 대한 공적 통제력이 회복되어야 OECD 수준의 고등교육 지원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대학 등록금 규모는 연간 14조 원 정도다. 3조 원 정도가 장학금으로 유지되는 것을 감안하면, 반값 등록금을 위해선 대략 5.5조 원 정도가 필요한 셈이다. 5.5조 원은 천문학적인 액수지만, 국가 예산이 연간 300조원 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 광장은 투 트랙을 달려야 한다. 당장에 등록금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을 늘리라는 요구를 함과 동시에 시장화된 대학의 포지션 변경을 또한 요구해야 한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들은 '반값 등록금'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세금을 넣을 순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반값 등록금' 이전에 대학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하위 30%의 대학을 퇴출시키잔 얘기다.

아니다. 이 논리에 말리면 도루묵이다. 정작, 퇴출시켜야 할 대학은 적립금을 쌓아두고 한 푼의 전입금도 내지 않고 있는 이른바 기업형 대학들이다. 대학을 기업의 논리로 봐서 퇴출시킬 것이 아니라 대학을 공적 영역으로 이해하는 감독권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은 가장 생산적인 복지다. 무상 등록금을 시행하면, 다른 복지의 압력이 거세질 거란 반대 논리는 그래서 틀렸다. 가장 생산적인 복지에 우선 투자하면, 사회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므로 다른 복지를 감당할 여력이 생긴다. 복지 국가의 모델이 되는 나라들이 엄청난 국가 재정 지출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 역시 거기에 있다.

등록금이란 눈물의 씨앗을 제거하는 일, 그건 정치의 몫이다. 정치권이 지금 벌여야 할 논쟁을 어떤 이에게만 반값이냐 아니면 누구나에게 반값이냐가 아니다. 당장엔 어떤 이에게 만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누구나를 향해가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일단, 대학의 등록금 결정권을 회수해야 한다.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대학에 대한 공적 통제를 반드시 공약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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