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재판을 담당했던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교체됐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오 판사를 교체해달라는 국민청원이 40만 명을 넘고 관련 시위, 성명이 이어지자 부담을 느낀 오 판사가 사건 재배당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민청원 사건과 관련해 담당 재판장인 오덕식 부장판사가 해당 사건을 처리함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담당 재판장이 사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재배당 요구를 해 사건을 재배당했다”고 30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모 군(16) 사건 담당 재판부를 형사 20단독(오 부장판사)에서 형사 22단독(박현숙 판사)로 재배당했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중당 당원들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만들어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판을 맡은 오덕식 판사의 교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오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에 사건을 재배당해달라는 취지의 서면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 예규에 따르면 담당 판사가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기 곤란하다는 서면을 제출하면 법원장의 위임을 받은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사건을 재배당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은 오 판사가 구속된 조주빈 씨와 함께 ‘박사방’ 운영진으로 활동하다 별개의 성 착취물 공유방 ‘태평양 원정대’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이 모 군의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성범죄 사건 가해자에 대해 비교적 약한 처분을 해오던 오 판사가 성 착취물 공유 사건의 재판을 맡게 된 사실이 알려지며 27일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란 제목의 청원은 31일 현재 40만 넘는 동의를 얻었다.

청원이 올라온 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오덕식 판사는 성폭력 가해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의 일상 복귀는 어렵게 하는 판결을 내린 인물”이라며 “오덕식 판사는 텔레그램 성착취 관련 재판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성명을 냈다. 30일 오전 민중당 당원 다섯명이 오덕식 판사를 교체하라며 법원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앞서 오덕식 판사는 성범죄 사건 관련해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판결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8월 고 구하라 씨를 불법촬영물로 협박한 최종범 씨에게 해당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당시 구 씨가 강하게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봐야한다고 주장해 실제로 이를 확인했다. 또한 ‘구 씨가 최씨에게 먼저 연락했다’,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가지는 사이였다’, ‘구씨가 먼저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상촬영이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후 구 씨는 11월 죽음을 택했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6개 시민단체는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판사 오덕식은 옷 벗어라”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행동은 “언론에 동영상 제보메일까지 보냈던 가해자에게 재판부는 고작 집행유예를 선고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정의가 무너져도 끝끝내 피해자 곁에 서서 인권을 수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방기하는 법관들도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오 판사는 고 장자연 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서울시내 웨딩홀에서 수십차례 불법촬영을 저지른 사진사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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