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총선이다. 신문 지상에 등장한 해외의 경제전문가들의 발언을 보고 있으면 이제 인류 문명은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다.

이런 불안감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번지고 있다. 밑바닥에서는 이미 자영업 붕괴와 고용불안이 현실화 되고 있다. 정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은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파국으로 이미 빠져든 상태다.

대기업들도 구조조정 국면으로 진입했다.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산층들이 직접적 피해에 노출되면 언론이 표현하는 불안감은 실질적 고통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없더라도 정부가 비상한 대책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합뉴스TV 자료 사진

정부 여당이 상정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이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실효적 카드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규모나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1회적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100만원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 아니냐는 것이다. 소득 하위 70% 가구라는 기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추이를 보면서 지속적인 대책을 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 다가온 총선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100조원”을 들고 나온 게 그렇다. 미래통합당은 이미 40조원 규모의 국민채 발행을 제안한 바 있다. 과거 같으면 정부 여당을 향해 ‘돈풀기 선거’, ‘포퓰리즘’ 등의 비난을 퍼부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기가 아닌 것이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의 “100조원”에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가적인 재정확대가 아니라 512조 본예산의 세부내역을 국회가 수정하자는 것이란 점이 그렇다. 이게 추가 부담을 감수하자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보수야당의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다. 야당의 제안을 선거를 의식해서 거부해 결과적으로 경제위기를 방조한다는 프레임에 말려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앞서의 40조원 국민채 발행 등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말하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여당의 선거 메시지는 방역대책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일반 국민들도 한국의 방역대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수밖에 없고 이게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정권심판론적 구호로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공적인 방역 대책을 강조하는 여당의 선거 전략은 이런 조건을 비켜가자는 의도로도 읽을 수 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박정희 정권의 의료보험 체계를 말하고 김종인 위원장이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자신의 기여를 말하는 것은 이러한 여당의 선거전략에 대한 대응이다. 실제 김종인 위원장이 1977년 당시와 노태우 정권에서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할 당시에 의료보험제도의 도입과 확대 적용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익히 알려져있듯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방역 대책의 성공은 진단키트 등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제도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직접적으로 과거 정권에서 메르스 사태의 교훈으로 도입된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진과 환자들에 대한 치료 과정에 공적의료보험제도의 기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이유로 황교안 대표나 김종인 위원장의 주장이 여당의 선거전략에 균열을 낼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한 쟁점은 소극적 지지층이나 무당층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의 분석에 의하면 이 시점에 무당층으로 남아있는 유권자들은 실제 투표에 나섰을 때 보수야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투표율을 낮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즉,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이번 위기는 보수야당에 불리한 결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런 조건을 놓고 전체 선거판을 조망해보자. 경제위기의 예감 속에서 범진보 유권자층을 최대한 결집시키고 지켜내려는 여당과, 유실된 과거 지지층을 복원하기 위해 중도 공략에 나서는 보수야당의 시도는 결국 양당 중심의 선거 환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한 비례정당이라는 우회로 역시 이런 조건을 강화하는 한 요인이다. 특히 의도치 않게 우회상장(?)이 가능한 조건을 만든 여당의 이중비례정당 상황은 제3세력을 지향하는 정당 중에서도 특히 원내의 진보정당에 커다란 타격을 입힐 것이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무색무취의 제도 개선 필요만으로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정치개혁은 그것으로 이득을 보게 되는 정치세력이 누구냐, 그들이 가진 정치적 정당성은 어떤 것이냐에 대한 대중적 결론이어야 했다. 하지만 진보세력은 거대세력과의 안이한 동거 속에 안주했다. 선거제도 개혁은 원내정당들끼리의 ‘기술적 타협’이라는 엘리트주의적 정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에게 이번 선거는 재앙이 되겠지만 동시에 유산을 남길 수 있는 터닝포인트 역시 될 수 있다. 퇴행적이고 기만적인 네 탓 논쟁이 아니라 경제위기론이라는 구체적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 것은 기회이다. 100조 받고 40조 더, 40조 받고 다시 10조 더 라는 식의 숫자 놀음이 아니라 정부의 대대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9일 해고없는 기업 지원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하라고 제안한 것은 긍정적이다. 선거에서의 유불리는 이제 잊어야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든지,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든지 하는 고루한 명제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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