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칼럼] 1994년 고등학교 축구 최강자는 누가 뭐래도 문일고등학교 축구부였다.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대한축구협회장배 우승, KBS배 준우승, 서울시협회장배 준우승, 추계중고축구연맹전 준우승 등등 고교무대를 휘저었다.

그 가운데에는 MVP 타이틀을 잇달아 거머쥔 성한수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조회시간에 그가 우승컵을 힘차게 들어 올릴 때마다 교정을 가득 메운 전교생들은 환호했다. 대학팀뿐 아니라 프로팀에서도 그를 영입하려고 공을 들였다.

축구팀이 승승장구하면서 응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에서 하는 어느 경기든 8강전부터는 1, 2학년이 번갈아가며 동대문운동장과 효창구장을 찾았다. 그해 가을, 어느 준준결승전이 효창운동장에서 열렸다.

골대를 좌우로 하고 중앙선 양편에 두 팀의 응원단이 마주 앉았다. “아카라카치, 아카라카쵸, 아카라카친친 초초초 뭉게뭉게 짓뭉개 x교 선수 짓뭉개 문일! 문일! 와~~~” 구호와 북소리, 함성, 응원가로 기세를 올리면 맞은편에서도 이에 질세라 더 크게 맞받아쳤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프로축구는 지루하기 그지없었으나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게임은 국가대표경기만큼이나 박진감 넘쳤다. 문일이 앞서나가자 상대편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승패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리자 어깨 걸고 응원하던 친구들은 서로 얼싸 안고 준결승진출을 축하하며 기쁜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패배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하면 대학에 못 가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들에게 그 대회는 마지막 기회였다.

경기 전날 상대팀 감독이 문일고 감독에게 전화해서 당신네 3학년 선수들은 대학에 들어갈 조건을 갖췄으니 이번에 지면 끝인 자기들에게 한 번만 양보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는 뒷얘기를 체육선생님이 들려주셨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축구화를 벗어들어 잔디밭에 내려치며 서럽게 통곡하던 시커멓게 그을린 선수들의 모습과 축구장을 지배하던 성한수의 능란한 발놀림을 한날 한자리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 되어 고교 최우수선수로 꼽히던 성한수는 전국체전에서 심판판정에 불복하며 주심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대한축구협회로부터 3년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고 만다. 1년 6개월 만에 징계가 풀렸으나 그 후 그의 이력은 십대시절의 찬란함에 비할 바 못되었다. 부상, 수술, 재활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프로축구에서 이름 없이 은퇴하고 실업팀에서 3년간 더 뛰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청소년 시절 필드를 호령하다 불운으로 꺾여버린 성한수의 오늘과 오래전 그날 운동장에서 흐느끼던 아이들의 현재를 나는 모른다. 관중석에 앉았던 내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아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다 부처님 말씀에 힘입어 수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모두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바야흐로 봄이다. 이제 곧 거름을 치고 땅을 갈아 씨를 뿌릴 것이다. 울타리를 친다하지만 싹 트기 전에 새가 쪼아 먹어버릴 수도 있고 새싹이 돋자마자 벌레가 갉아먹어버릴지도 모른다. 더 자라서는 산토끼나 고라니가 베어 먹거나 뿌리 채 멧돼지의 한 입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잃고도 가을에 얻을 내 몫이 훨씬 많으니 밑지는 농사는 아니다. 싹 틔우지 못한 채 꽃 피우지 못한 채 열매 맺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작물을 보면서도 원망하며 한탄하지 않는 여유를 가졌으니 밑지는 인생도 아니다. 세상살이가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좌절과 절망도 나의 일부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싹트고도 꽃 피지 못하는 자가 있고 꽃 피고도 열매 맺지 못하는 자가 있다 - 논어 자한편 21장

단야선방 https://mayzephyr.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