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정기인사 발표로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이하 법관 784명이 전보되고 신임법관 96명이 임용되어 2월 21일자로 새 임지에 부임하였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뇌물수수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건 당사자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으로부터 ‘정직 10개월’의 처분을 받은 지방법원 부장판사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당사자인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징계에 승복할 수 없다며 소송을 냈지만, 결국 2월 14일 또 다른 사건에 개입하여 청탁의 대가로 5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하고 자신이 석방해 준 피고인에게 외상술값 800여 만원을 대납시킨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당사자가 구속되기 전에 사표를 받으면 그만?

대법원은 당사자가 구속되기 전에 사표를 받는 것으로 마치 사건과 관련 없음을 증명하려 하는 듯하다. 이러한 류의 사건에서 늘 그렇듯이 구속되거나 입건되기 전날 사표를 받으면 “현직”이 아니기에 해당 기관의 체면이 지켜지는 것처럼 가장하는 형식논리도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지만, 문제를 일으킨 해당 판사가 과거에도 변호사에 대한 무리한 감치명령 등으로 물의를 야기한 외에 각종 추문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보면 과연 우리 사법부에 자정기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한겨레 1월24일자 10면.
정기인사 발표를 보면서 상당수의 법조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법관의 신분이 보장되어야 하고 부당한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한 일다. 과거 정권의 눈밖에 난 판사들이 갑자기 격오지로 쫓겨나고 이어 사표를 내던 현실이 아직 먼 옛날의 일이 아니기에 ‘인사유감’을 표명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도 까마득한 후배 밑으로 발령이 난 부장판사가 있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전보된 판사가 있으며, 기수와 격에 맞지 않는 보직을 부여받은 판사들이 보였다. 쉽게 말해 승진에 누락된 지 오래 되거나 품성과 자질을 의심 받아 전보조치를 통해 “알아서 나가 주길” 유도한 인사가 눈에 띄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정치적 탄압과는 질이 다른 조치이지만 당사자나 법조계에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남는다. 한마디로 누구나 “나가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경우 법원은 별다른 대책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품성·자질에 문제 있는 법조인에 대해 별다른 대책 없는 법원

아직도 사법부에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소위 ‘별’을 다는 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엄존하고 당사자 스스로도 확실한 승진으로 받아들여 기꺼워하는 와중에, 전관예우의 길을 스스로 마다한 채 법관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관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민사단독 판사로 일할 때엔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아 한 쪽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선고하기만 하면 되는 ‘의제자백 사건’에만 판결을 쓰고 쟁점이 있는 일체의 사건에 판결문을 작성하지 않은 법관이나, 사건 당사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추문이 끊이지 않는 법관에 대한 조치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는지 생각나지 않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의 법관 재임용 제도와 법원의 인사원칙이 실질적으로 정도에 맞게 구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법부와 법관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키고자 일부 미꾸라지들의 소행을 쉬쉬하며 감추려는 사이에, 그들이 일으킨 흙탕물은 사법부를 벗어나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고 감히 지적하고 싶다.

▲ 문화일보 2007년 2월9일자 7면.
법관이 뇌물을 받는다는 사실이 이제 낯설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매우 당혹스럽다. 물론 우리사회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뇌물판사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일이 생긴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투명성기구는 2006년 8월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법과 정의가 제대로 집행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63.2%가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법조계는 과연 부패로부터 안전한 성역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실제 변호사로 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의뢰인과의 상담과정에서 법관에 대한 뇌물제공 의사를 밝히면서 그 전달을 주문하는 요청을 받고 당혹했던 기억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그러한 사례가 더욱 당연한 것처럼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 못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뇌물판사

국민들은 법조인들이 전문성이나 우월적 의식에 기초해 폐쇄성을 갖고 있다는 점, 법조계가 제대로 된 부패통제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는 점, 법조계 스스로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 점 등을 불신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 법원이 내부고발자나 부패업자에게 보여 준 판결 성향 및 사법피해자들의 절규를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법권력 조차도 오히려 고위 공직자, 정치인, 재벌 등 힘 있는 자들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대하는 제도화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신을 여전히 갖고 있다. ‘제도화된 편견’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체화되어 자신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한다고 하는 가운데에서도 한쪽에 기울게 보는 것을 말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07년 세계부패보고서(GCR2007)'에 따르면 조사대상 86개국 중 25개국에서는 각 나라별로 전체 가구 중 10% 이상의 가구가 “재판을 받기 위해 뇌물을 줘야 한다”고 응답했고, 그 중 20개국에서는 30% 이상의 가구가 “손쉽게 재판 받을 권리와 판결의 공정성은 뇌물수수와 연관돼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 멕시코, 모로코, 베네수엘라, 알바니아, 인도네시아, 페루, 타이완 등에서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국제투명성 기구는 "파키스탄의 경우 2002년 조사에서 하급 법원을 경험했던 응답자의 96%가 '부패 관행을 겪었다'고 응답했고, 러시아에서는 매년 2억1000만 달러의 뇌물이 법정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법불신의 문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조사를 보면 우리의 경우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인 것 같기도 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적한 사법부패 및 불신의 원인은 크게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사법부의 뇌물수수’의 두 가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은 우리나라도 과거 숱하게 겪었던 문제이다. 너무 독립적인 판사는 벽지로 보내지거나 사직 압력을 받았으며, 문제 있는 판사(부패판사, 정치판사)들을 영전시키거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들을 ‘다루기 쉬운' 판사들에게 이관하기도 했던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뇌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사법부

우리나라 사법부에 일부 외국처럼 뇌물수수 관행이 횡행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국제투명성기구가 ‘법원 종사자들이 뇌물수수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은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도 결코 뇌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판사의 부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낮은 보수'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며 “불공정한 진급과 전근절차, 지속적 훈련의 부족을 포함한 불안정한 고용 조건으로 인해 판사와 법원 종사자들이 뇌물수수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투명성기구 위겟 라벨 회장은 또, “법 앞에서의 평등은 민주사회의 근간으로, 법정이 탐욕이나 정치적인 이해에 의해 부패될 때 정의의 잣대는 위협받고 보통 사람들은 고통 받는다”며 “사법부패로 인해 유죄가 면책되고 동시에 결백의 소리가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2월15일자 10면.
국제투명성기구의 이러한 지적에 비추어 과연 우리 법원이 내부적으로도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정치적 외압에 굴복한 수많은 판결들이 있었음에도 법원은 제대로 된 반성과 조사를 통한 과거사의 참회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대통령도 지적한 바 있으며, 긴급조치 위반 사건 관련 판결문의 판사 실명 공개와 관련하여 법원 내외부에서 드러난 여러 거부 반응을 볼 때, 우리 사법부와 법률가들이 과연 진정한 역사의식과 판단능력을 보유하였는지 비판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수많은 전직 판사들이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면서도 판결문을 작성한 실명 공개를 거부한 것은 비겁한 태도라는 지적에 대하여 논리적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판결로만 말한다 해도 이름을 감추면서까지 말해야만 독립성이 지켜질 것 같지는 않으며, 판결을 통해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무시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접하는 법원 직원들의 고압적 업무처리 자세 및 급행료 수수 등을 통한 전근대적 병폐의 잔존, 내부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법관 및 직원과 품성에 문제가 있고 소양이 부족한 법관이나 직원에 대한 엄정한 징계나 재임용 탈락 조치 등을 통한 사법부의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법원 특유의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적 문화도 아직 완전히 타파되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의 자정 기능,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사법 관료화의 폐해, 즉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능가하는 법관 서열제 및 근무평정과 승진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으며, 형식적이거나 보복적으로 운용되는 재임용제도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상위 법관에 절대 복종하는 일부 법관들의 잘못된 의식 또한 여전한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과거 판사들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서열에 따라 한 줄로 선다고 했던 뼈아픈 지적 외에 오늘도 법원 주위에서 삼각편대를 지워 이동하는 판사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각종 대책들이 제시된 적이 있지만 여전히 형식적 구호의 나열에 머무르고 말았던 것이 현실이고, 실질적으로 문제 법관을 도태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직도‘건강한 사법’의 구현을 위한 사법개혁은 여전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특출한 한 사람의 지식보다 보편적 상식을 갖춘 여럿의 판단에 무게를 두어, 형사사법 절차에서 국민의 참여를 도모하는 배심제가 실시되어 종래 사법절차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국민이 사법절차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길이 열렸고, 공판중심주의의 강화를 통한 민주적 사법제도의 구현을 위한 진전이 있었다는 점 등에서 참여정부의 사법개혁은 분명히 우리 사법사상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좋은 제도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올바른 의식개혁이 수반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법관들이 이러한 헌법조항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며 권력과 인맥과 돈에 따라 비독립적으로 심판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관예우나 관선변호도 따지고 보면 권력적 외압에 취약한 법관의 자화상이며 판사들이 안면에 휘둘리는 것도 우리 사법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판사들은 고등학교나 대학동문, 연수원의 동기, 지연, 법원 내에서 동료관계 등으로 형성된 개인적 친소관계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원고나 피고가 담당법관을 알아낸 후 그와 친한 변호사를 찾아 나서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수치스럽게도, 특정 법관과 친한 변호사를 찾아주는 유료 법률서비스가 존재한다.

‘신의 대리자’라는 엄숙한 사명 앞에 겸허해지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를 그저 ‘일상업무의 하나’로 대하여 당사자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게 하고, 마치 스스로를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인격체로 착각하여 거들먹거리는 못된 법관이 있는 한, 한 전직 교수가 판사를 조롱하고 능멸하며 또 석궁으로 판사를 쏘았을 때, 상당수의 국민들이 오히려 교수를 옹호하고 심지어 환호하기까지 했던 엄청난 불신의 깊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법원도 인사시스템의 혁신을 위한 다면평가 제도 등의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고백하고 공론의 장에 제시하여 건전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해답을 찾는 용기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데 게을렀던 한국 사법부

지금까지 우리 사법부는 ‘판결 무결점주의' 등 권위주의·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데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사법부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이 사회 갈등의 종점이 돼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는 충분한 심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자기 다짐이 담긴 말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신기루일 수 있다. 한 학자의 지적처럼“최고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결이 최고(supreme)이자 최종(final)이며 무오류(infallible) 결정이라는 오랜 관념은 오류이며 특정 시점의 판결이 항상 보편타당한 최종 판결은 아니다”. 판결문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며, 법적으로는 끝이 났을지 몰라도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악법은 결코 사법부가 판단기준으로 삼는 법이 될 수 없듯이, 잘못된 사법부의 관행과 내부문화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 사법부의 고민을 광장에서 모두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여 현명한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내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우며 시골 마을에 깃들어 있다. 가진 능력이라곤 번식력밖에 없다는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얼치기 법조인이기도 하다. 짧은 공직생활 중 여러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과 정의의 소중함을 절감하였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였다.

조직이라는 이름과 명분 아래 수 많은 사람들의 인격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며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더욱 과격해지는 자아를 다독이기도 한다. 맑은 세상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부패의 악취가 말끔히 사라진 세상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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