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오디션 출연자를 보고 더 이상 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코리아 갓 탤런트>에 감동종결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최성봉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막노동이라고 소개했다. 3살 때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5살 때 구타에 못 이겨 뛰쳐나온 후 혼자 살아왔다고 했다. 그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보통 오디션에서 소개되는 불쌍한 사연들이란 게 외모가 부족해서 기를 못 펴고 살았다든가, 부모님 중의 한 분이 아프시다든가,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5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니. 이건 차원이 다른 불행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5살 어린 나이에 혼자 살 수 있단 말인가?

요즘 오디션이 점차 천편일률적인 '불쌍한 사람들의 감동 성공기'로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그런 스토리들이 신파 드라마의 재방송처럼 느껴질 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구도에 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불행을 겪은 사람을 보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성악곡을 불렀다. 이미 예견됐던 장면이었다. 어느 불쌍한 사람이 나와 깜짝 놀랄 만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리라는 예측 말이다. 그런 장면에서의 감동은 폴 포츠나 수잔 보일 때 겪었기 때문에 충분히 단련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폴 포츠나 수잔 보일하고는 차원이 다른 불행을 겪은 이가 들려주는 노랫소리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오디션 홍수가 이미 식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던 터에, 이렇게 강도 높은 스토리의 등장은 <코리아 갓 탤런트>의 행운임이 확실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지나치게 무리했다. 너무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방송이 끝난 후 최성봉이 예고에 다녔다는 제보가 나오면서 논란이 터졌던 것이다. 최성봉이 거짓말쟁이로 마녀사냥당할 수 있는 위기였다. 고아로 크면서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한 줄 알고 감동했는데, 이미 예고에서 단련된 사람이었단 말인가?

알고 보니 최성봉은 사전에 예고에 다닌 사실을 밝혔고 인터뷰 영상까지 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방송하지 않은 것이다.

<코리아 갓 탤런트> 측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문제의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어느 잡초의 감동스토리'를 첫 회에 방영함으로써 시청자의 시선을 확실히 잡기 위해 무리수를 뒀단 얘기다.

다행히 인터뷰 영상이 존재했고, 이것을 뒤늦게 방송사 측이 공개함으로써 사태가 조기 진화됐다. 만약 그런 영상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방송사 측이 무슨 변명을 해도 네티즌은 불신했을 것이고, 최성봉에겐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평생 동안 고통을 겪은 어린 청년이 이제 막 세상으로 나왔는데, 방송사의 상술에 휘말려 사회로부터 더욱 큰 냉대를 받는 일이 생길 뻔한 것이다.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그 비극을 누가 책임질 수 있나?

일회적인 해프닝이 아니다. 어느 특정 프로그램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디션 제작진이 모두 느낄 '감동스토리의 압박'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도전자를 감동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캐릭터화하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또 터질 수 있는 사고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디션 제작진들은 스토리를 인위적으로 극대화하거나 출연자를 과도하게 캐릭터화하는 일의 위험성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최성봉이 예고에 다녔다고 사전에 방송했어도 충분히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5살 때 혼자 된 사람이 이만큼 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심금을 울린다. 그 정도 선에서 담담하게 방송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거기서 더 욕심내면 안 된다. 사람 인생을 시나리오화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갈수록 감동스토리 경연대회가 되고 있는 오디션이다. 이 부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말 큰 사고가 터질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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