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끈 축구대표팀은 독일대표팀을 상대해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부스터를 가동한 듯한 차두리의 엄청난 스피드, 골키퍼 이운재의 패널티킥 선방, 그리고 이동국의 멋진 발리슛 결승골은 모두 완벽했습니다. 이 수준급 평가전이 열린 장소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아닌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이었습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열린 경기에서, 그것도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최강 독일대표팀 정예 멤버를 상대해 완승(3-1)을 거두자 부산 축구팬들은 들썩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은 4만5775명의 축구팬은 끝까지 남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축구 열기를 발산해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지방에서 A매치가 열린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6년간 지방에서 A매치가 열린 것은 2007년 6월, 제주 서귀포에서 이라크와 평가전을 가진 것이 전부였습니다. 파주 NFC(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부담감, 선수 관리 등 팀 내부적인 문제 뿐 아니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월드컵 예선, 평가전 등 거의 모든 A매치는 서울, 수원 등 수도권에서 치러졌습니다.

▲ 전주월드컵경기장
당연히 지방 축구팬들은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팬들만 축구대표팀 팬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지방팬에게도 균등하게 A매치를 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대한축구협회 팬존(게시판) 등을 통해 꾸준하게 청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흥행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수도권 팬들만을 위한 A매치는 오히려 전국적인 축구 열기를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함께 치른 일본은 메인 경기장인 도쿄국립경기장, 사이타마 스타디움 뿐 아니라 오사카, 요코하마, 미야기, 시즈오카 등 전국을 돌며 A매치를 치르고 있습니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축구 강국들도 큰 규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각 지역의 경기장들을 A매치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선수들은 지역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국가대표로서 의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듭니다. 또한 경기장 수익 증진, 나아가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A매치가 열릴 때 경기장 주변 상권이 살아나고, 응원 도구, 먹을거리 등 축구 관련 상품 매출이 증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축구 A매치가 지방, 그리고 팀에게 줄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많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4년 만에 지방에서의 A매치 개최를 확정지었습니다. 오는 7일 열리는 가나와의 평가전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갖기로 한 것입니다. 전주에서 축구대표팀 경기가 열린 것은 2005년 8월 4일, 동아시아대회 북한전 이후 5년 10개월 만입니다. 전주 축구팬들을 위해 축구협회는 5일, 박주영, 이청용, 지동원 등 팬사인회를 하나은행 전주지점에서 갖기로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오랜만의 A매치에 대한 전주 팬들의 기대감은 경기 예매율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1,2등석은 모두 매진됐고, 3등석 역시 거의 다 팔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제야 지역 팬들의 마음을 헤아린 축구협회의 결정이 일단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주는 전북 현대가 연고를 두고 있는 곳입니다. ‘닥공 축구(닥치고 공격을 뜻하는 속어)’로 올 시즌 신명나는 축구를 보여주고 있는 전북 현대에 걸맞게 언제나 많은 관중들로 축구 열기를 뿜어냈던 곳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이었습니다. 모처럼 태극 전사를 맞이하는 전주 지역의 축구 열기가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A매치가 열리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많은 지역팬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는 전주 A매치 평가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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