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미국 민주당 경선은 사실상 결론이 난 듯하다. 버니 샌더스는 충분한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했고, 반면 조 바이든은 상당한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한편 당내 주요 정치인들의 지지도 활발하게 모아내고 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결국 조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을 열렬히 지켜봐온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선거의 최종 결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여기 태평양 너머 제21대 총선을 코앞에 둔 우리는 결과보다도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에서 그는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주의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정치적 측면에서 ‘급진적 민주주의자’이기도 하다.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 그의 행보와 연설들은 당선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선거운동을 기회 삼아 민주주의를 설파하러 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민주주의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므로.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 의원이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를 하루 앞둔 지난 2월 10일(현지시간) 오전 맨체스터의 한 체육관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막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슬로건 : “‘나’가 아니라 ‘우리’”

선거 슬로건부터 흥미롭다. “‘나’가 아니라 ‘우리’(Not me, Us)”,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색적으로 들린다.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인데, 이러한 관점은 종종 이기주의를 버리라는 철 지난 훈계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샌더스의 슬로건은 그보다는 ‘다 함께 공멸하느냐, 아니면 다 함께 살아가느냐’의 논리에 가까워 보인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알지 못하며 당신과 아무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만큼이나 그들을 위해 싸워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 나라를 함께 바꿔나갈 수 있을 겁니다.”(“Fight for Someone You Don't Know”)

한국에서도 비슷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싸우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남을 챙기냐는 소리가 단박에 나온다. 설득력 있는 주장은 ‘당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인 당신도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문제에 관심 갖자는 것이고, 남성인 당신의 딸이나 여자친구를 위해 여성문제에 관심 갖자는 것이고, 비장애인인 당신도 어느 순간에 장애를 입을 수 있으니 장애문제에 관심 갖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반드시 그른 것만은 아니겠지만, 한 인간에게 기대되는 측은지심이나 한 사회에 기대되는 연대의식을 우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샌더스는 그러한 우회를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민들의 측은지심과 연대의식을 끊임없이 건드리는 정공법을 택한다. “이 선거운동은 단지 나(버니 샌더스의 당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연대의 운동을 만드는 것과, 우리 중 누군가 아프면 우리 모두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Our Stories”) ‘나의 문제’는 힘이 세지만 항상 평등하게 작동하는 논리는 아니다. 어느 순간 나이브한 것이 되어버린 타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은 민주주의와 건강한 사회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샌더스는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주장하고 설득한다.

캠페인 : 지지를 모으고, 운동을 만든다

흔히 정치와 운동은 대립어처럼 표현된다. 대체로 운동을 하던 사람이 정치판으로 떠날 때 ‘이제 운동이 아니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식이다. 샌더스의 선거 캠페인은 정치와 운동의 경계를 허문다. 자신의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를 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독려하는 운동을 한다. 대개 선거에 나선 정치인은 “변화를 만들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한다. 그런데 샌더스를 지지하는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힘을 주는 리더란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당신에게는 변화를 만들 힘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다.”(“Not me, us”) 샌더스는 거꾸로 지지자들에게 “변화를 만들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말한다는 얘기다.

샌더스의 강력한 우군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도 이렇게 말한다. “단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닙니다. 노동계급을 위한 거대한 운동을 만드는 거죠.”(“Rep. Alexandria Ocasio-Cortez Endorses Bernie Sanders for President”) 샌더스 본인의 말은 좀 더 직접적이다. “어떤 대통령도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울, 또한 기업 엘리트들과 맞설 용기를 가진 수백만의 사람들이 필요해요. 그들은 아주 강력하죠.”(“Not me, us”)

수백만의 사람들을 모아내기 위한 샌더스의 캠페인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빛난다. 미국의 교외 주거단지는 집 앞으로 차고와 작은 잔디밭이 딸려 있는데, 미국인들은 이 잔디밭에 ‘야드사인’이라고 부르는 표지판을 심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곤 한다. 말하자면 가장 기본적인 풀뿌리 선거운동인 셈이다. 그래서 출마자들은 홈페이지에 스토어를 열어 야드 사인을 팔아 선거자금을 모은다. 흥미로운 건 가격이다. 조 바이든의 야드 사인은 25달러인데 반해 버니 샌더스의 야드사인은 3달러다.

샌더스는 이러한 가격 차이에 대해 SNS에서 ‘우리의 선거운동은 부자가 아닌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그가 만들어가는 선거운동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울프가 했다고 알려진 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싸우고 저항하는 과정은 그 싸움과 저항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샌더스는 그의 선거운동이 무엇에 기반하고 있으며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

버니 샌더스는 결국 경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의 선거운동이 ‘단지 버니 샌더스에 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타까움보다도 기대감이 든다. 2016년 그의 돌풍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사회주의에 열광하게 만들고, 오카시오-코르테즈를 포함한 젊고 진보적인 정치인들을 의회로 진출시키는 단초가 됐다. 샌더스가 선거운동을 ‘그에 관한 것’으로 기획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2020년 그의 선거운동도 미국 사회를 뒤흔들 또 다른 씨앗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아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나’가 아니라 ‘우리’”를 외치고 있다.

[영상] "Fight for Someone You Don't Know"

[영상] "Our Stories"

[영상] "Not m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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