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새 진보정당 건설 연석회의 최종합의'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민노당 강기갑 의원 등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미안한 말이지만, 주변에 점점 진보정당의 통합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가 줄어든다. 밤샘 회의 끝에 합의에 이르고, 이 합의문을 둘러싸고 또 당내 이견을 겪는 등 나름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들만의 '난전'일 뿐이다. 그 둘 사이에 아무런 합의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세상은 그저 무심하다.

왜일까? 몇몇 언론이 겨우, 진보정당의 합의 과정과 후폭풍 양상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것은 북한의 3대 세습에 관한 문제였다고 전해진다. 최종 합의문에는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고 기술했는데, 이를 두고 진보신당 내에 심각한 반발이 일고 있다.

일단, 내 독해력이 함량미달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저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북의 권력 승계 문제지만 자기들은 이해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의 권력 승계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는 견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를 존중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흔히 프레임을 언어의 문제라고 하는데, 진보양당이 합의한 언어는 도무지 상식의 프레임에선 이해되지 않는 말장난이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고작 저 쟁점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지금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것을 압도하는 논란거리라는 점이다. 겨우겨우 합의한 문장이 영 함량미달이라는 점도 안쓰럽지만, 저 문장에 합의하기 위해 그 난리법석을 부렸으면서 겨우 합의한 것을 두고도 새로운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단 점은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학생운동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진보정당이 합의한 저 한 문장이 함의하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배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설령, 학생운동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생활인이 되어 나름 소박한 삶의 올바름을 추구해가는 사람들 역시 저 한 문장으로 진보정당이 서로 존재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북한의 문제 중요하다. 진보적 가치와 의제로 해석하고 또 재해석하고 입장을 달리하고 견해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세습 문제는 이미 북한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적이건, 덜 진보적이건, 민족적이건 세계 시민적이건의 입장을 떠나서 인간 이성의 보편타당한 원칙이라는 '상식'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된다. 문제 심각하다. 혈연으로 권력을 세습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권력 세습을 정면에서 비판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이 무슨 의미가 있을런지 알 수 없다. 보편타당함을 합의할 수 없는 진보정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위해 꺼이꺼이 프레임화 되지도 않는 말장난 같은 합의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통합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북한의 세습에 대한 입장을 합의하는 것이라는 데 심각한 자괴감이 든다. 이쯤 되면 여전히 진보정당이 운동권, 그들만의 유희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견적이 안 나온다.

보수 정당들이 '복지'로 다투고, 현직 교육감들이 '무상'의 개념을 끌고 가고 있는 때에 진보정당들은 '북한의 세습'을 두고 다투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반값 등록금'을 말하고, 민주당 대표가 '미래의 진보'를 말하고 있는 때에 진보정당 대표들은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나 해대고 있다. 북한의 세습을 비판하기 힘든 민주노동당이나 그 문제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이나 운동권만 느끼는 성감대에 집착한단 점에선 매한가지다. 진보양당은 지금 가장 색깔 없는 아니 자기들만의 선명함으로 세상이 다 덮어질 것이라고 믿는 그런 '잉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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