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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피의자 신상 공개, 기자들 생각은?"국민의 알권리, 공개 시점은 언론이 결정할 일"..."국민청원은 언론 아닌 경찰에 촉구한 것"
김혜인 기자 | 승인 2020.03.24 13:48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SBS가 ‘텔레그램 n번방’의 피의자 ‘박사’ 신상을 공개한 뒤 언론은 연달아 조 모 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언론사가 먼저 이를 공개하는 게 맞는지를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SBS는 23일 ‘8뉴스’에서 첫 보도로 ‘텔레그램 n번방’ 피의자 ‘박사’의 신상을 공개했다. SBS는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며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신상 공개 이유를 밝혔다.

이후 24일 조선일보는 1면에 '장애인 돕던 오빠가 n번방 그놈이었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일보는 11면에 조 모 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조 씨의 과거 사진 등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SBS뉴스가 23일 보도한 n번방 운영자 조모씨. SBS뉴스 화면 캡처

SBS의 신상공개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판단은 엇갈렸다. 우선,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는 언론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미디어스가 접촉한 기자들은 SBS 보도 내용을 논외로 두고,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조 씨의 신상은 공개할 만하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조 씨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국민청원이 220만을 넘었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엄한 처벌’을 언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공개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2009년 조선일보에서 범죄자 강호순의 신상을 먼저 공개한 사례가 있고 언론이 꼭 사법기관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먼저 알았더라도 공개 여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사 기자는 “보도할 만했다. 이미 어제 커뮤니티에 신상이 돌아다녔고 언론사들도 어느 정도 알고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차원이 가장 큰 이유이고 공개하면 그에게 남은 여죄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보도 시점은 크게 상관 없다고 본다"며 “언론 보도 시점은 경찰을 따라야하는 것이 아닌 자체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 주간지 기자는 “피의자 신상공개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며 "법적으로도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SBS가 선을 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조회수, 시청률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주간지 기자는 “경찰이 먼저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이틀 먼저 조씨의 신상을 공개한 이유가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도피 중도 아니고 이미 잡힌 피의자, 그리고 사법기관도 공개를 고민하던 피의자를 단지 하루 먼저 공개해 '단독'을 붙이는 건, 공익보단 군중의 심리에 기댄 단독 욕심으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 인터넷매체 기자는 “앞서 MBC가 조두순 얼굴을 공개했을 때도 들었던 고민이지만 언론사가 시청률이나 주목도를 고려하지 않고 이같이 판단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범죄 혐의자에 대해 국가가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 언론이 나서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게 맞는가는 딜레마”라며 “언론과 여론이 법이 되는게 맞냐는 고민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국민청원이 밝힌 신상 공개의 주체는 언론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일간지 기자는 “신상공개는 일종의 ‘명예형’에 처하는 것으로 언론사의 신상공개는 220만 명이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사회적 합의의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십수 년 동안 고질적으로 논란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를 단죄하자는 요구에서 비롯됐고 이를 해결하자는 요구를 정책 결정 집단과 수사기관에 전하고 있다”며 “법이 없으면 입법을 하고 부실수사는 강력한 수사를 하라고 요청하는데 언론사가 앞서 이를 공개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안의 경우 워낙 범죄 사실이 명확해서 언론사의 피의자 신상공개가 논란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언론사 자체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언론사는 시청률 경쟁이나 선정적 보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에 있기 때문에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은 추후 인권침해, 2차 피해, 불필요한 신상정보 공개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인 기자  key_ma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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