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SBS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핵심 피의자 조주빈씨의 신상을 경찰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 결정 하루 전날 공개했다. SBS는 사건의 중대성, 추가 피해의 방지, 국민의 알 권리 등을 고려해 구속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익적 목적'에 따른 불가피한 공개였다는 설명이다.

23일 SBS는 저녁종합뉴스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해서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영상을 인터넷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돈을 받고 퍼뜨린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SBS는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고 피의자 신상공개 취지를 밝혔다.

이어 SBS는 "그래서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며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 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SBS 3월 23일자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25살 조주빈> 보도화면 갈무리

그동안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 문제는 피의자 인권 문제와는 별개로 모호한 기준, 재범방지 실효성에 대한 의문, 대중 공포와 호기심 자극, 피의자 가족 등 주변인의 2차 피해 소지 등의 논란을 야기해왔다.

피의자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이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1항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를 적용할 수 있다.

공개 요건이 충족되는지는 각 지방경찰청별로 설치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한다. 공개심의위원회는 변호사, 정신과 의사, 교수 등 외부 전문가 4명과 경찰 위원 3명으로 구성된다. 사건의 중대성, 재범방지의 효과, 추가 피해 발생의 억지력 등에 따라 사건별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기준이 모호하고 신상공개에 따른 실익이 없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지속돼 왔다.

때문에 언론 역시 이 같은 보도를 할 때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SBS가 앵커멘트를 통해 조 씨 신상공개의 취지를 어느정도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이 취재 내용을 보도하기로 판단하는 행위는 언론자유의 측면에서 보장되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정당국 발표를 수시간 앞두고 구속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했어야만 하는 시급성이 인정되는 보도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 씨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었다. 조 씨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적 여론이 일고 사건의 중대성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에서 경찰이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 구성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거나, 심의위원회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거나, 또는 심의위원회가 비공개 결정을 내린 상황이 아니다. SBS가 경찰 결정 하루 전날 조 씨 신상을 공개한 배경에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조 씨 신상공개와 함께 보도된 내용은 SBS가 강조한 '공익적 목적' 보도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 온라인에서 40여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인 해당보도의 내용은 조 씨의 대학생활을 담고 있다. 조 씨는 대학 졸업 직후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보도는 그가 정보통신을 전공함에도 글쓰기를 좋아해 학내 독후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학보사에서 편집국장을 맡았고, 감성적인 학보 기명칼럼을 썼고, 평균학점이 4.0을 넘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조용한 아이"였다는 학우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리포트는 "박사가 그래도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다는 게 일차적으로 먼저 소름이 돋았고…"라는 조 씨 학보사 동료의 말로 끝난다. 조 씨가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보도 내용은 피의자 신상공개의 공익적 목적, n번방 사건의 실체와 처벌 등 사건의 본질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SBS 보도 이후 많은 언론에서 조 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리고 SBS 보도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조 씨가 평범한 학생이었음을 부각하는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조 씨가 주말이면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학보사 활동 시절에는 학교 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노력하자는 기사를 썼다는 내용 등이 '두 얼굴'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보도되고 있다. '장애인 돕던 오빠가 n번방 그놈이었다', '낮엔 봉사, 밤엔 박사 n번방 조주빈의 두 얼굴', '조주빈의 소름 돋는 이중생활', '조주빈, 무엇이 그를 20대 악마로 만들었나'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와 독자는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되거나, 피의자 신상에 호기심을 갖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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