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

다소 거칠긴 하지만, 지난 2번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를 비판해온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문제의식은 이렇게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알레르기 반응은 정략적 폄훼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핵심적 지지기반이라 할 보수 어르신들은 여전히 지난 정부를 공격하는 가장 주요한 포인트로 '북한에 돈을 갖다 바쳤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동아일보 6월 2일자 1면
간단히 말하자. 이명박 정부는 비밀접촉을 통해 돈 봉투를 주고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사려했다. 북한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실로 보인다. 만약, 아니라면 대대적인 반발을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북한의 이 도발적 주장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몇몇 대목을 부정하긴 했지만 그 반응의 강도나 부정의 정도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이에 대해 <프레시안>이 인터뷰 한 전직 고위당국자는 청와대가 "이 정도 선에서 끝내자는 메시지를 북에 보낸 것"이라며, "청와대까지 대응을 했다가 북한을 자극해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는 사태까지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이 비밀접촉의 녹취록을 공개해 이명박 정부의 당국자가 북에게 '돈을 줄 테니 정상회담을 하자' 구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전파된다면 화염을 불사하는 보수 어르신들의 분노로 이명박 정부는 새까맣게 타들어 갈 것이다.

결자해지, 수금의 시간이 왔다. 지난 2번의 남북정상회담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정권', '돈 주고 정상회담을 산 대통령' 정도로 요약되는 공세를 잔혹할 정도로 집요하게 제기 했다.

그 중에서도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002년에는 현대상선을 통해 북에 정상회담 대가가 송금했다는 '4억 달러 대북지원설'을 제기했다. 훗날, 이 문제에 대한 특검이 진행되기도 했다. 일부는 사실이었고, 일부는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통일부 국정감사는 이 문제로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사활적으로 물고 늘어졌고,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암시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한을 보여 주며 문제를 키워갔다. 연일 1면 탑이었다. 그 때 한 국회의원은 국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상회담이 국민을 속이고 뒷돈을 주고 얻은 결과물이라면 북한 김정일 정권은 이를 대남 위협용으로 계속 사용할 것이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 발언은 이명박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고 있는 맹형규 의원이 2002년 9월 30일 국감에서 했던 말이다. 맹 의원은 이어 “정부가 서둘러 서해교전사태를 덮으려고 하는 등 대북저자세와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도 대북 비밀지원금 때문이 아니었느냐”며 정부를 맹공 했다. 당시, 맹 의원의 이 발언은 지금 그대로 이명박 정부에게 돌려줘도 무방하다. 이명박 정부가 뒷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하려 했다면 이는 지속적인 대남 위협용이 될 것이다. 국정조사가 필수적이고, 필요하다면 청문회도 해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의 주장도 그랬다. 그 때, 맹 의원이 생각했던대로 이 정부 역시 '연평도와 천안함 사건'을 덮으면서까지 비밀지원금을 주려 했다.

당시 조중동이 뽑았던 기사의 제목들 역시 대단하다. <조선일보>는 "홍콩 마카오 통해 북에 송금, 북에 혈세 퍼줘…국정조사 실시를”(2002.09.26), “국정원 통해 북한 송금”(09.27) “분식회계 가능성…현대상선 묵묵부답”(09.28) 등의 자극적 제목을 뽑아, 아직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북한 송금 주장을 기정사실화 했다. 기간 동안 <조선일보>는 5일에 걸쳐 '사설을 이 문제에 집중 했다. 사설의 제목을 살펴보면 `한반도 김-김 뒷거래설 밝혀라’(2002.09.26) `뒷거래설에 왜 정부는 말이 없나’(09.27), `회계장부계좌 당장 추적해야’(09.28) `김 대통령이 직접 의혹 풀어야’(09.29) `정부는 진실이 그렇게 두려운가’(09.30)였다.

<동아일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4900억 주고 남북정상회담 했나”(2002. 09. 26일 3면), “북 유령회사로 4900억 유입”(27일치 1면), “북, 4억 달러로 미그기 구입”(27일자 4면)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화끈하고 단정적인 기사를 썼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인용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전형이었다. 사설 역시 ‘4억 달러 퍼주고 정상회담 했나’(27일자), `대선까지 버티고 갈 건가’(30일자) 등 만만치 않았다.

이제 방송까지 해야 할 조중동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돈 주고 사오는 행위에 대해 조중동이 얼마나 투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 지난 2002년 당시 조중동의 공세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의혹을 최대한 부풀리고, 새로운 의혹까지 발굴해내는 발군의 능력이었다. 이 투철한 문제의식은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조중동이 다른 태도를 보인다면, 사상의 투철함은 의심을 살 것이고, 이는 결단코 보수 어르신들이 좌시하지 않을 문제이다. 조중동의 3일 보도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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