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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풀꽃'의 너처럼! 여성 캐릭터에 대한 진일보한 접근[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3.20 15:20

[미디어스=이정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기존 의학 드라마의 전형적 서사 장치를 깨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표방하며 포문을 열었다. 또한 알고 보니 키다리 아저씨였던 재벌가 막내아들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 산부인과 양석형(김대명 분),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 간담췌외과 이익준(조정석 분)까지 20년지기 친구들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이어 2화의 바통은 채송화가 이어받는다. ‘귀신’이라 불리는, 지각없이 출근하고 많은 수술을 소화하며 후배 전문의의 논문까지 챙기는,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소화해내는 슈퍼우먼 채송화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거기에 다섯 명 주인공들의 주변 전문의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이야기의 폭을 확장한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방점을 찍는 건, 바로 '사람'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의 시 <풀꽃>의 그 '너'처럼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 그래도 밤새워 해야 하는 13시간짜리 수술을 앞둔 채송화에게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이 조른다. 미디어와 '프렌들리'한 뇌센터장 민기준 교수는 지하철 영웅이 환자로 들어오자 공명심에 앞서 뇌를 여는 개복 수술을 하겠다고 했던 것. 병원장까지 나선 회의에서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은 덜하고 정밀도가 높은 TSA수술로 변경했지만, 문제는 민 교수가 이 수술 경험이 거의 없단 점이다. 이에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은 '환자가 죽는 걸 지켜보기겠냐'며 채송화를 닦달하는 한편, '잘 모르시면 제 말대로 하시라'며 환자에게 위협하다시피 수술을 변경하고자 애쓴다. 

이 상황은 언뜻 보면,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이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행한 돌발 행동처럼 보인다. 결과는 예상 외다. 물론 민기준 교수가 TSA수술 경험이 일천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용석민이 자신의 논문 사례로 지하철 영웅을 이용하기 위해 밀어붙인 것이었다. 용석민이 내세운 선의,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건 그의 욕망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반 외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는 13명인데 그들을 어시스트할 레시던트가 장겨울 한 명인 상황. 그래서 외려 교수들이 레지던트의 안부를 묻는다. 심지어 이익준의 경우 자신의 수술에 어시스트를 부탁하기 위해 장겨울 앞에서 '픽미 픽미'하며 애교 섞인 댄스를 보여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교수들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장겨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응급실 콜을 받고 내려간 장겨울. 교통사고로 들어온 7세 남자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환자 보호자인 어머니에게 장겨울은 자신이 전달받은 결과 그대로 전달한다. 치명적이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시라. 심지어 어머니가 CPR을 하지 않아 더 위험에 빠졌다는 말까지 해버린다. 이 말을 지나가다 들은 안정원은 장겨울에 대해 의사로서 기본이 되지 않은 사람이란 선입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다시 응급실 콜을 받고 간 장겨울의 행동으로 인해 무색해진다. 오랜 노숙 생활로 동상에 걸렸고 심지어 그곳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노숙자. 그가 뿜어내는 악취와 구더기로 인해 의료진 모두가 난감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장겨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구더기를 떼어내기 시작한다.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른다는 말이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화의 이야기는 바로 그 겉으로 다 드러나지 않은 사람됨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쉽게 예단하고 선입견에 눈을 가리는 우리들의 '판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오래 보아야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채송화의 동급생이었던 여성이 환자로 들어온다. 일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고, 다시 뇌에 암이 생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 남편은 해외에 일하러 가고, 홀로 투병을 해야 하는 여성은 잇따른 수술로 한껏 우울해져 있는 상황이다. 

어르신들만 있는 병실에 배치된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그저 유방을 한쪽 절개한 사람에 대한 어긋난 호기심이라고만 여긴다. 그 역시 반전이다. 알고 보니 병실의 어르신들은 그녀의 자격지심과 달리, 당신들에 비해 아직은 한참 젊은 그녀가 예뻤던 것이다. 

유방도 한쪽밖에 없고, 뇌수술까지 해야 해서 삶이 아득하기만 했던 그녀가 그래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는 너무나 젊어 보였던 것. 여든 넘으신 엄마가 초로의 딸에게 너는 젊어서 좋겠다 하듯이. 그렇게 그녀를 곱게 쳐다보는 어르신들의 시선은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들던 그녀를 구출한다.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 어린 커튼을 그녀가 열어젖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삶의 구원이다. 

그렇다면 2화의 이야기를 이끈 채송화는 어떨까? 그녀에게 '귀신'이란 별명을 붙인 건 용석민이다. 그녀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용석민에게 비춰진 그녀는 인간의 경지 그 이상으로 성실하고 일 열심히 하는 선배 의사란 의미이기도 하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지만 2화에서 보여진 채송화는 그저 워커홀릭이 아니다. 사귀던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일상을 이어가는 '프로'. 채송화는 용석민이 뻔히 자신의 욕심으로 그를 움직여 무리하게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어시스트를 자처해 뇌센터장 민기준 교수의 입장도 배려하고, 후배 용석민의 요구를 품어주는 슬기로운 포용력을 보인다.

하지만, 그저 포용력만이 아니다. 환자에게 무례했던 용석민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다시 한번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따끔한 훈계 또한 잊지 않으면서 그저 수술 잘하고 일 잘하는 선배 의사 이상의 ‘인간적 품격’을 보여준다. 일 잘하는 것 이상의 의사로서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목하는 '어른'들, '선배'들은 물론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른의 품격' '나이듦의 품격'을 지닌다. 그저 오래 살고 프로패셔널하게 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여성 한 명에 남자 네 명의 우정이라는 묘한 구도로 예의 신원호 피디의 작품처럼 ‘남편 찾기’로 회귀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2화에서 보여준 채송화, 장겨울 등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접근은 그간 드라마들이 답보해온 이분법적인 구도나 선을 그은 듯한 차별성에 천착한 묘사가 아니라 남성, 여성 이전의 사람 그리고 프로패셔널한 직업인으로서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의 김준완과 채송화 전 남친과의 대화. 연인 사이 일에 과한 참견이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전 남친에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 없냐'라고 반문하는 김준완의 태도는, 그 '귀신' 같은 삶에서 '파스' 같은 위로를 주는 친구들처럼 남녀 사이 그 이전의 '사람'이라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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