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설(說)'에서 '사실'로 드러난 지 1주일도 채 안 됐는데 너무나 많은 일들이 터져 나오면서 프로축구 출범 이후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선수가 최대 수십 명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고, 여기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빈 국가대표 출신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프로축구연맹 총재와 사무총장이 함께 나와 머리 숙여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같은 시각, 승부조작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K리그 출신 한 선수가 모 호텔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더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까면 깔수록 계속 더 큰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연맹을 비롯한 축구계는 말로만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하고는 정작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선수들 때문에 K리그 전체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고,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 정몽규(오른쪽 두번째)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불거진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연합뉴스
당장 정상적으로 열린 경기라 할지라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이 많아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많은 골을 넣고 이기거나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에 대해 "이거 다 조작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팬들의 시선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순수하게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나타난 결과였음에도 "모든 경기가 의심스럽다"고 할 만큼 경기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를 바라보는 팬 뿐 아니라 선수와 감독, 선수와 선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암암리에 있었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조직력, 팀워크를 중시하는 축구 팀 자체가 흔들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해 온 '선의의 선수들' 그리고 지도자마저 똑같이 범죄자로 의심받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전북 최강희 감독이 "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지도자와 선수 모두가 서로 못 믿게 된 게 가장 큰 문제다"라면서 "정상적으로 치른 경기를 두고도 의혹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고 허탈해하는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선수나 감독들이 현 상황에 얼마나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 15년째 대전 골문을 지키고 있는 골키퍼 최은성. 그는 지난 주말 전북 현대 경기 직후 참았던 눈물을 터트려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서 한 노장 선수의 눈물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번 승부조작 사태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선수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시티즌의 '프랜차이즈 스타' 골키퍼 최은성은 지난 주말 전북 현대와의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늘 이기려는 것보다 살려고 뛰었다"면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15년째 대전 골문을 든든히 지키면서 늘 강직할 것만 같았던 최은성이 흘린 눈물은 이번 일로 '승부조작 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팀의 고참으로서 비애, 그리고 절박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배신감도 느껴지고 그동안 해 온 노력들이 다 무너진 데에 대한 허무감도 들었겠지만 오랫동안 한 팀만을 바라보며 뛴 선수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팬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받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나선 그였습니다. 그런 모습에 많은 팬들은 안타까워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은성 뿐 아니라 90%가 넘는 대다수의 K리그 선수들도 아마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신뢰 회복을 위해 그들은 더 열심히 땀 흘리고 더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릴 것입니다. 그것만이 K리그가 다시 신뢰받는 리그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진정으로 보여줬을 때 실망했던 팬들은 다시 열렬히 응원하고 격려하러 경기장을 찾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열정을 갖고 달리는 이 '선의의 선수들', 그리고 이 선수들을 위해 기꺼이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선수들은 진심으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아울러 프로축구연맹이나 16개 구단 관계자들, 나아가 수사 기관까지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을 완전하게 색출해내 뿌리를 다 뽑아버리고,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검은 돈,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노력과 땀, 공정한 승부, 순수한 열정만이 인정받도록, 그래서 성실하게 뛴 선수들의 가치가 더욱 주목받는 '진짜 K리그'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뛴 선수가 다시는 축구계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새기고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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