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11일 “(김 회장이) 사적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 법 체계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재벌회장이 폭력배를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위해를 가한 것은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부정이 앞서 범행을 저질렀고 김 회장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년6개월에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 ‘선고’의 문제점과 재벌 봐주기 관행에 침묵하는 언론들

▲ 중앙일보 9월12일자 12면.
재판부의 이번 선고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일까.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점이다.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법원의 재벌 봐주기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강조한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기조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 법원의 ‘논리’에는 문제가 없을까. 많다. 재판부는 김 회장이 부정이 앞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는데 “사적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 법 체계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범죄행위”라는 재판부의 입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럼 앞으로 ‘사적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법체계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범죄행위’를 전국 곳곳에서 발생해도 범행동기가 부정이나 모성이 앞서는 경우라면 모두 집행유예로 선고를 하겠다는 걸까.

우발적 폭력이라는 법원의 설명도 애매모호하다. 재벌 회장이 회사 경호원과 조직 폭력배를 조직적으로 동원한 상황을 과연 우발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재벌 총수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집행유예나 사회봉사 명령이 선고됐을지 의문”이라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중앙 “재벌 비리 아닌 개인 문제” … 조선 “보복폭행 주점 인기”

11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들 가운데 이런 부분을 주목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국민일보와 서울신문, 한국일보와 한겨레가 기사를 통해 재판부의 이번 선고가 가진 문제점을 비판했고, 세계일보와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재판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한겨레 사설을 일부 인용한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자세가 이번 판결로 재확인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 법에 의한 지배는커녕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재벌 총수의 특권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한겨레 9월12일자 사설.
나머지 신문들은 단순히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 소식을 인용 보도했을 뿐이다. 특히 <“재벌 비리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제목을 뽑은 중앙일보의 12면 기사와 <“여기가 그곳 맞죠” 보복폭행 주점 인기> 기사를 같은 날짜 13면에 게재한 조선일보의 기사는 ‘압권’이다.

전자의 경우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재벌 차원의 비리 문제로 확대되는 걸 원치 않는 중앙의 ‘재벌적 시선’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자의 경우 ‘대중적 흥미와 관심’에 철저히 시각을 맞춘 조선일보의 ‘눈높이’와 ‘감각’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향의 '소극적 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지만 오늘자(12일) 아침신문 가운데 가장 ‘압권’은 경향신문이다.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10면에서 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9월12일자 10면.
그동안 재벌문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고, 지난 6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해서 <사회공헌으로 죗값 갈음…법원 ‘제3의 길’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강도 높게 비판해왔던 경향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경향이 오늘자(12일)에서는 <김승연 회장도 집행유예 … 항소심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회봉사 200시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관련기사 17면의 제목은 <한화 해외사업 다시 속도 낸다>였다.

‘전 사주’에 대한 예우차원이었을까. 유독 김승연 회장에 대해 ‘관대한 시선’을 보이고 있는 경향의 보도태도를 보면서 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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