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급속하게 전 세계의 유행병으로 번지고 있다. 전염병 이름은 낯설지 않은 ‘폐렴.’ 감기만큼 친숙하지는 않지만 들어보았던 병명이라 놀라지 않았다. 곧 진정될 것이고, 별 탈 없이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보였다. 확진자가 나오면 바로 격리하고, 치료에 들어갔다. 우린 이미 사스를 비롯해 전염병을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대처 방법도 체계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폐렴 정도야, 의료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바이러스 발생지인 특정 지역을 봉쇄했기 때문에 더는 문제 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차츰 안정기로 접어든다고 마음을 놓던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초중고 개학을 앞두고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무더기로 발생했다. 자고 일어나면 수십 명, 자고 일어나면 백 명. 진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섭게 증가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오늘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 선언을 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국민 모두 집에 머무르고, 이동하지 말라는 극단적 조치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건물은 폐쇄되었고, 접촉자는 격리되었다. 코로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의 생각 구조를 바꿔 놓았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냈다.

코로나가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 놓았고, 행동방식을 바꿔 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코로나 현황을 체크하고, 내가 생활하는 곳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수시로 전송되는 안전 문자는 각 지역의 코로나 확진자 발생 현황과 그들이 다닌 동선을 알려주고, 방역 상태를 체크하고 알려 준다. 또 안전을 위한 생활 수칙이 주기적으로 문자로 전송된다. 손을 깨끗이 씻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고, 종교 활동은 집에서, 외출 시 마스크는 착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침과 분비물로 전염되기 때문에 호흡기를 보호하고,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마스크 가격은 평상시보다 두세 배 넘게 치솟았다. 가격이 올라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미리 구매해 상당량의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마스크 부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1, 2위를 차지하는 단어는 코로나, 마스크, 코로나 확진자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염병에 쏠려 있다. 정부에서 마스크 관리를 시작하면서 공적 마스크가 공급되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봐야 하는 일도 새로운 생활 방식에 추가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승강기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멀찍이 떨어져 서게 된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이 되었고, 손을 씻고 손 세정제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할 때도 반찬을 함께 먹지 않고 개인 접시를 사용하며, 사람들이 많은 장소는 가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는다. 거리에 사람은 없고, 차로에도 차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직장인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고, 재택 근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의도치 않게 칩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며 밝은 표정으로 손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나도 직장과 집 외에는 다니는 곳이 없어졌다. 생활은 단출해지고, 동선도 단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로나로 시작되는 뉴스를 보고, 휴대전화로 전송되는 안전 안내 문자를 확인한다. 전염병 예방 수칙과 열,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지켜야 할 행동 수칙이 매시간 방송을 통해 휴대전화를 통해 전달된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다. 생활이 단출해지고, 동선이 단순해진 것에 비해 문자와 정보는 불안하고, 피곤할 정도로 많아졌다.

어제 점심 식사를 같이하던 선생님이 말했다. 자기는 유월까지 쓸 마스크가 있지만 매일 약국에 줄을 서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말했다. 코로나가 곧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말이었다. 짧게는 여름, 길게는 겨울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득, 무서워지고 우울해졌다. 나는 보름 정도 쓸 마스크밖에 없는데 어쩌지, 하는 마음과 내일 약국을 찾아 줄을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상대로 막힘없이 강변북로를 달릴 수 있었다. 차 창문을 살짝 열었다. 며칠 사이 밤공기가 달라졌다. 차갑지 않고 알싸했다. 생각에 보니 아침 공기도, 한낮 창문으로 드는 볕도 느껴지는 온도가 달랐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오고 있었다. 벚꽃 개화 시기가 멀지 않았다. 꽃이 피고, 지기 전에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