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행 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이 분명 헌법에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농지법은 농지소유의 조건으로 경작지와 주거지 사이를 규정하는 '통작 거리'라는 것을 두기도 했을 정도로 엄격했다. 논밭과 가까이 살아야만 농지를 살 수 있었다.

'쌀소득직불보전제도'(이하 쌀 직불금제)는 2005년 7월부터 시행됐다.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을 금지한 WTO 체제가 발효되면서부터다. 미국이 자국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농업 경쟁력이 취약한 국가들의 제도적 장치의 해제를 요구하자 나타난 제도다. 그 결과, 정부가 가을에 일괄적으로 쌀을 사들이던 '추곡수매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고 그 대안으로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의 쌀 직불금제가 도입됐다.

쌀 직불금제는 애초부터 문제가 많던 제도였다. 시행 이듬해인 지난 2006년 쌀 직불금을 수령해간 사람은 99만 8천 남짓이었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무려 28만 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 가운데 62%에 달하는 17만 3497명이 공무원이었다.

놀라운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의 숫자는 150만 명 남짓이다. 살 직불금을 수령해간 공무원이 17만 명을 넘는다는 것은 최소한 전체 공무원의 10%이상이 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있단 얘기가 된다.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나 쌀 직불금은 수령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랏일을 보면서 나라 법을 어기고 있는 공무원의 숫지가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2008년 쌀 직불금 논란이 터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이들이 돈을 타간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없는 외지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농지를 해당 지역의 농민들에게 소작으로 준다. 거저 소작을 주지는 않을 것이니, 소작 주는 비용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쌀 직불금까지 챙겨간다. 투기를 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외지인들이 농촌을 이중으로 착취하는 몹쓸 구조이다. 쌀 직불금 부당 수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이유다.

▲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쌀 직불금을 수령해간 사실이 밝혀졌다. 서 후보자는 "농촌을 주말에 왕래하면서 농사의 1/2 이상을 직접 지었다"고 해명했다. 이 얘기를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서 후보자가 자경하지 않는 땅에서 직불금을 수령하기 위해 허위로 농지원부를 작성했단 사실도 드러났다. 청문회 내내 부인하다가 청문회가 다 끝나고 나서야 "사실을 확인해보니 형님이 작성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농사를 지었다는 확인은 보통 마을의 이장이나 통장이 해준다. 땅 주인의 부탁을 소작인이 인정상 안 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못하다간 농사를 못 짓게 될 수도 있다.

서 후보자는 72년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후 내내 농림부에서 근무했다. 농지를 소유하기 위해선 자경의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농지를 구매했을 때는 아마도 '통작 거리' 원칙이 아직은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서 후보자는 농업 진흥을 위한 공무를 수행하면서 농촌을 착취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다른 이도 아니고 농림부 장관이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던 사람이라면 정부의 농업 진흥정책은 그 자체로 설득력을 잃게 된다. 쌀 직불금제는 농촌의 붕괴를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최소의 보루였다. 쌀 직불금이 만들어질 당시 서 후보자는 농림부 차관이었다.

겉으로는 농민을 설득하며, 제도적 지원을 떠들던 서 후보자가 실상은 이 보루마저 강탈해간 무리였다는 얘기다. 이 허접하다 못해 비루한 현실에 대해 서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며 질끈 버텼다.

▲ 서규용 농림장관 후보자가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것에 대해 KBS와 SBS는 '논란', '쟁점'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공방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MBC는 이마저 하지 않았다.
지난, 2008년 살 직불금 부당 수령 논란이 일었을 당시 이에 연루된 언론인의 숫자도 공개됐다. 총 558명의 언론인이 본인과 가족 명의로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는데, 본인 명의로 수령한 언론인 106명 가운데 KBS가 26명으로 가장 많았고 MBC가 11명으로 뒤를 이었다. 당시, 언론노조는 자체 조사를 통해 관련 명단을 전부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KBS와 MBC에도 서 후보자와 동일한 도둑의 무리가 있기 때문일까? 방송 뉴스는 서 후보자의 자질과 장관 수행 적합성에 대해 별다른 보도를 하지 못했다. 어제(23일) 인사청문회 보도는 단순 스케치에 그쳤고, 제대로 된 검증 보도는 전무했다. 농업행정을 하며, 농지법을 어긴 공직자.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불법으로 편취한 공직자가 농림수산부 장관이 될 자격이 있는 걸까? 만약, 서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된다면 이제 인사 검증을 하네, 인사청문회를 했네 마네 하는 쇼를 정말 그만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가소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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