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에 임재범의 출연이 확정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기보다는 의구심을 던졌다.

'설마? 임재범이?'

간간히 OST만을 통해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가수였기에, 그가 방송에 그것도 예능프로에 나온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고, 왜 그가 많은 이들이 뽑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중 한 사람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열풍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몸은 현재 온전하지 않다.

과거 무협지가 한국을 강타한 적이 있었다. 무협지를 보면 절대 무공을 지닌 고수들이 겨루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매우 화려하고 멋진 싸움이 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주 약간의 틈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들의 싸움에서 움직임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를 내뿜는 겨루기는 아무런 몸동작이 없어도 숨 막히는 것이었다. 그 고수들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실은 그들의 모든 기력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한 명은 그 자리에 쓰러지거나 피를 토하는 것으로 겨루기가 끝나곤 했다.

'나는 가수다'는 진검 승부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가요계 무림 고수들이 일전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천하제일무도회'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비록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것이지만 그들이 가진 전부를 쏟아내기 위해 애쓴다. 진검승부에서는 아주 작은 여유조차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승부는 남을 이기기 위한 승부가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승부이다. 그래서 더욱 더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무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수들이 받을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건모 씨는 안압이 올라서 병원에 갔어야 했고, 윤도현 씨도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고생했던 것이다. 백지영 씨가 무대 위에서 멍해져버려 눈물을 쏟은 것은 그들이 육체적인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도 너무나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진검승부를 보는 관중은 물론 감동을 받고 즐겁지만 가수들은 하루하루가 고역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임재범 씨의 건강 상태는 자못 이해될 만하다. 오랜만의 방송 출연이면서 최고 연장자로서 대한민국의 최고 가수 중 한 명으로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그 자신을 강하게 몰아치도록 했을 것이다. 그래서 병원 신세를 지고 결국 맹장 수술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펑크'내지 않겠다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송을 강행할 의지를 보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면서 동시에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고수들의 대전을 통해서 진정한 음악을 느끼고 감동 받기를 원하는 것이지 이 대전을 통해 가수가 손상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개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가수들 한 명 한 명 다 소중한 대한민국의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임재범 씨는 과감하게 쉬어야 한다. 스스로 '펑크'를 내지 않겠다고 한 맹세가 있으니 제작진이 그를 쉬게 만들어야 한다. 그가 온전한 건강 상태로 무대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펑크'가 아니고 당연한 절차이게끔 제작진이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도, 그 무대를 만드는 주역인 가수를 지키는 것도 제작진이 할 일 중 하나이다.

더불어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 방도를 만들어야 한다. 곡을 편곡하고 연습하고 무대를 만드는 데 2주라는 시간은 너무나 촉박하다. 이러한 경연이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가수들이 나가떨어질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출연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 무대에만 올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건강이 지속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힘들어 하는 가수들을 위해 잠시 방송을 쉴 수 있는 '안식기간'을 만들든지 혹은 또 다른 '한 팀'을 구성해서 이 두 팀이 격주로 방송을 하게끔 한다든지 해서 준비기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안식기간'시에 새로운 가수가 들어왔다 나가는 것은 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이 때는 기존 탈락한 가수들이 스페셜 무대를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고, 2팀제로 했을 경우에는 기존팀을 쪼개고 추가 인원을 넣거나 혹은 정말 완전히 새로운 팀을 구성해서 '각 팀'마다 어느 팀이 더 좋은 무대를 만들어냈는지를 비교해 보게 하는 것도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방송' 하나가 가수들에게 이렇게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웃긴 일일 수도 있으나, 이미 이 프로그램은 그런 '방송'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 제작진의 많은 고민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재범은 쉬어도 된다. 몇십 년 동안 방송에서 그의 노래를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절박하게 이런 무대를 기다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한두 달을 기다리지 못해서 그를 비난할, 그렇게 냉정한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부디 건강을 회복하고 좋은 무대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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