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탁구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번 연속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이렇다 할 뚜렷한 에이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유망주'로 주목받던 선수, 유승민이 이 대회 남자 단식에서 '난공불락'과 같던 중국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후 다시 중국 선수들의 거침없는 강세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유승민의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은 세계 탁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한국 탁구계에는 상당한 쾌거를 가져다 줬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1년 앞두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2011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탁구가 또다시 '세계 최강' 중국의 벽에 막혀 동메달 2개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의 기적을 다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비교적 기분 좋게 대회를 마친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겁 없는 10대 신예 선수들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 남자 탁구 기대주 3인방 정영식, 김민석, 서현덕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남녀 복식에서만 두 개의 동메달을 땄습니다. 여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김경아-박미영 조야 지난 2009년 대회에 이어 또 한 번 메달을 따내며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딴 김민석-정영식 조는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던 가운데 세계선수권 첫 메달을 따내며 매우 귀중하고 의미 있는 성적을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중,고교 시절부터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던 19살 동갑내기 김민석, 정영식은 성인 실업팀에 입단한 뒤 나선 첫 세계 선수권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줘 '1위보다 더 의미 있는 3위'를 차지했는데요. 어린 나이에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큰 대회에서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한국 탁구계 입장에서는 당연히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메달권과는 인연을 맺지 못해도 이번 대회에서 어린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고교생 에이스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서현덕은 석하정과 조를 이뤄 출전한 혼합 복식에서 중국 조를 꺾고 8강까지 오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또 '제2의 현정화'로 관심을 모았던 고교생 선수 양하은도 두 번째 세계 선수권에서 16강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며 역시 여자 탁구 차세대 에이스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유승민, 오상은, 주세혁, 김경아 등 노장 주축 선수들이 나름대로 분전했다 '중국의 벽' 때문에 막혀 아쉬움을 남겼던 것에 비해 10대 신예들의 의미 있는 선전들은 분명히 '작은 희망의 씨앗'으로 볼 만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김민석, 정영식, 서현덕, 양하은 등은 한국 탁구계가 몇 년 전부터 키워왔던 유망주들이었습니다. 이미 세대교체 실패 등의 아픈 경험을 갖고 있었던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량 좋은 선수들을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탁구계에서 적극 육성해 태어난 선수들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다양한 경기 경험, 탄탄한 기본기와 특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 신예 선수들은 청소년 대회는 물론 성인 무대에서 '겁 없는 신예'의 면모를 보여주며 서서히 떠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국내 성인 최강자들을 물리치기도 했고, 월드컵, 세계 대회 등에서도 성인 선수들을 꺾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2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또 한 번 큰 가능성을 남기며 한국 탁구에 밝은 미래를 안겼습니다.

당장 세계 정상급 성적을 내며 두드러지지 않다 해도 한 걸음씩 위로 올라서고 있는 이들의 행보는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무궁무진한 인재 풀을 갖고 있는 중국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이전과 다르게 많은 선수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좋은 현상이자 기대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동기 부여, 그로 인한 기량 발전은 우리 탁구 전체에도 어떠한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이며, 이는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라는 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또 한 번 큰 가능성을 보여준 탁구 신예들이 보다 더 탄탄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제대로 세계 탁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결과까지 낼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하며, 기대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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