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은 각 나라 축구 최강 클럽 팀을 가리는 최고 대회입니다. 그만큼 프로 뿐 아니라 일정 자격을 갖춘 실업, 아마추어 팀도 참가해 최고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펼칩니다. (영국 등 몇몇 유럽 국가는 동네 축구팀도 FA컵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중소 규모 팀들 입장에서는 FA컵이 자신의 팀도 알리고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죽기 살기로' 경기를 펼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내며, 지역팬들 나아가 모든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적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0년 프랑스 FA컵 준우승을 차지한 FC 칼레가 그랬습니다.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항구도시 칼레의 축구클럽인 FC 칼레는 정원사, 화가, 수리공, 자영업자, 교사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 축구 4부리그 팀으로 '순수 아마추어'를 지향하는 클럽이었습니다. 그들이 FA컵에 도전했을 때만 해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칼레는 기적을 썼습니다. 1부 리그 팀들을 잇달아 제압하고 결승까지 진출하며 당당히 결승전이 열린 파리 생드니 스타디움에 입성한 것입니다. 낭트와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8만여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칼레는 아쉽게 후반에 2골을 내주며 1-2로 패하고 준우승했지만 우승팀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끈기만으로 우승에 도전한 그 모습 자체가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FA컵에서도 아마추어 팀들의 위대한 도전은 이어져왔습니다. 2004년 '이종 클럽 팀'이었던 재능교육이 32강전에서 대학 강호 건국대학교에 1-0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오른 것을 비롯해 봉신클럽이 2004년부터 3년 연속 32강에 올라 'FA컵 단골 손님'으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비록 두 팀 모두 우승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냈지만 순수 아마추어 생활 체육 팀들의 FA컵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해당 팀들에 꿈과 희망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 동국대와의 FA컵 2라운드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는 포천시민구단 선수들 (사진=포천시민축구단)
올해도 어김없이 FA컵 32강전이 다가왔습니다. 18일, 전국 16개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32강전은 K리그 팀들과 내셔널리그, 대학 팀 간 맞대결로 벌어지게 됩니다. 내셔널리그 12개 팀, 대학 3개 팀이 오른 32강전 대진을 보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한 팀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바로 챌린저스리그(K3 리그) 최초로 32강에 오른 포천시민축구단이 주인공입니다. 포천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FA컵 2년 연속 우승을 이뤘던 수원 삼성과 '역사에 길이 남을' 32강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창단해서 이듬해인 2009년, 챌린저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경력을 보면 포천이 '축구 좀 하는'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팀 선수들은 전원 낮에 직장 생활을 하거나 공익 근무를 하고 저녁에 축구 선수 생활을 하는 아마추어들입니다. 그야말로 '주경야축'을 하다 보니 선수들은 프로 팀 선수들에 버금가는 체력적인 문제를 호소하며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축구 선수로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새로운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선수 경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포천의 25명 선수들은 모두 프로 진출이나 실업팀 적응에 실패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방위산업체, 공익근무 등으로 대체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온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일을 하고 저녁에 하루 1시간 반 - 2시간 정도 훈련하는 것이 전부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고, 프로 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팀 운영 비용도 프로 팀 A급 선수 1-2명 연봉 수준에 불과하고, 선수 개인에게 돌아가는 급여, 수당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포천은 챌린저스리그 강호로 주목받았습니다. 창단 2년만인 2009년에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올 시즌에도 8경기를 치르면서 6승 2무 무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최근 상승세를 바탕으로 포천은 FA컵에서도 대학 최강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를 잇달아 연파하고 32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꿈과 열정만으로 챌린저스리그 팀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스스로 보여주며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FA컵 2년 연속에 빛나는 K리그 명문 팀 수원 삼성과의 32강전을 당당히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포천은 수원 삼성과의 전력 차를 인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고 싶은 마음은 하나일 것입니다. 그토록 바랐던 프로 팀에서 뛰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밟고 싶었던 K리그 그라운드에서 투지를 불사르며 포천 선수들은 기적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국판 칼레'를 꿈꾸는 포천시민구단의 '당당한 맞짱'이 어떤 승부를 만들어낼지 기대되는 가운데, 포천시민구단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는 왠지 모를 설렘을 가져다 줬습니다. "비록 2년 연속 우승컵의 주인공으로 상대하기 버겁겠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넘지 못할 산은 아닙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축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칼레의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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