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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차 방송작가 계약해지에 표준계약서가 있었다[인터뷰] 박경희 KBS 강릉국 작가가 '부당 계약 해지'를 호소하는 이유
송창한 기자 | 승인 2020.02.26 08:49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작가 박경희 씨는 2009년부터 KBS 강릉방송국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일해왔다. 올해로 12년차 작가인 그에게 최근 회사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2018년 말 KBS가 도입한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가 박 작가 계약 해지의 근거가 됐다. 이전까지 KBS에서 프리랜서인 방송작가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은 1%대에 불과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준계약서였다. 표준계약서에는 프로그램 개편 또는 폐지가 계약만료 시점으로 명기돼 있었고, KBS강릉은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더는 박 작가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계약 만료 시점은 오는 3월 16일. 통상적인 프리랜서 계약 해지처럼 보이지만 박 작가는 부당한 계약 해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은 지난해 KBS 자체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성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계약 해지의 배경에 자신의 내부 고발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KBS 강릉국 전 모 PD로부터 계약 해지 위협을 받았고, 직장 내 성희롱을 목도하며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탄원서, KBS 성평등센터 신고 등의 형태로 고발해왔다. KBS 강릉국 측은 계약 해지와 내부 고발은 별개의 건이며, 종합적 고려 끝에 프로그램 개편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계약만료의 결정적 요인은 제작진 전원이 박 작가와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입장을 내놨다. (관련기사▶KBS강릉국 12년차 작가의 호소 "부당 계약 해지")

양측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상황,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박 작가를 만나 그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를 들었다. 다음은 박 작가와의 일문일답. 

박경희 KBS 강릉방송국 작가 (사진=미디어스)

-부당 계약해지를 호소하는 이유는?  

"제가 좋게좋게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례로 2014년 무렵엔 강릉국 작가 중 한 명이 임금 조정 과정에서 소외됐다. 그 친구 일을 제가 좀 앞장서서 부당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저 작가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스타일', 회사와 PD들이 정했으면 따라와야지 자기가 뭐라고 나서서 저러느냐는 사내 인식이 있었다. 저에 대해 PD들은 좋은 생각을 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잘라버린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그 분은(전 모 PD) 작가들을 자르고 내쫓는 게 PD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탄원서 문제로 그 분이 제게 사죄하던 날 저는 진심일 거라고 믿겠다고, 진심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했다. 그날 국장님이 자리를 떠난 후 전 PD는 '예전에는 내가 작가들 여러명 내보냈다'는 말을 했다. 도대체 평소 작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그 자리에서조차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참 납득하기 힘들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는지, 어떤 조직의 부장, PD 이런 역할이 어떤 사람의 존립을 좌지우지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어 보였다. 

특히 전 PD는 프리랜서와 관련해 소속사 매니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본인이 결정하려고 한다. 한번은 라디오 생방송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저와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 친구를 붙잡고 '30만원 더 받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할래, 아니면 30만원 포기하고 편하게 일할래'라고 강요했다. 제가 그 친구를 어떻게 한다고 저 분이 왜 저렇게 나에게 심하게 구나 생각했다. 

탄원서를 낸 것이 계약 해지의 결정적 계기라고 생각한다. 탄원서를 계기로 PD가 작가에게 사죄를 한 것이지 않나. 그것은 정규직 PD로서 자존심상 도저히 허용이 안 되는 것이다. PD가 작가에게 사죄한 것을 수모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저를 꾸준하게 내보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연장선상에서 성희롱 사건 신고도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KBS 강릉국은 제작진 의사를 종합해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박 작가와 함께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강릉국 프리랜서들의 공동 호소문도 있었다는데

"공동 호소문을 본 적이 없다. 궁금하다. 거기 이름이 올라있다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한테 일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손편지를 썼다. 손편지를 누가 강요해서 쓰지는 않지 않나. 많이 격려해주시고 알려주셔서 다방면으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손편지를 쓴 친구가 호소문에 제가 본인을 힘들게 했다고 하더라. 이 친구뿐만 아니라 임금 때문에 제가 도움을 줬던 친구도 저한테 손편지를 썼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썼던 친구가 그 호소문에 이름을 올렸다. 인간적으로 서글펐다. 프리랜서라는 세계가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자리이긴 하다. 워낙 수요가 한정되고, 싸워서 이겨야 먹을 게 있는 자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같이 일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나한테 등을 돌렸다니 많이 서글펐다. 

노조 집행부가 호소문을 쓴 프리랜서들과 만나 호소문을 같이 봤는데 제가 거의 악마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아주 폭압적이고 구체적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들이 입증을 못하는 것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합의하에 호소문을 파쇄했고, 나중에 다시 써온다고 했는데 안 써왔다고 하더라.

프리랜서들은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계속 일을 이어갈 수 있는지 판단한다. 그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회사에서 누가 제게 그러더라. '박 작가님 왜 이렇게 고집이 세느냐', '전 PD에게 좀 져주면 되는데'라고. 지금은 퇴사하신 어떤 분은 '전 PD가 왕이라는 걸 인정하고 너는 편하게 일해'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지난해 임금삭감, 이번 계약해지 과정에서 표준계약서가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처음 도입한 표준계약서로 국장, 편성국에서 전횡을 하지 않았나 싶다. 작년 28% 임금삭감 때는 계약서 조항을 무시하고 사전 협의,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28% 임금삭감은 사실상 나가라는 얘기다. 한 달에 80만원이 깎이고 그 고통을 지금까지 감내하고 있다. 감당이 안 돼 지난 가을과 겨울에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역대 강릉국 오후 프로그램이 평가에서 1위를 한 적이 없는데 이것도 회사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번 개편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지목한 배경이 많이 의심스럽다. 개편 이유도 없이 프로그램을 폐지-신설한다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시사강원', '정보광장', 이름은 바뀌어왔지만 시사프로그램은 제가 쭉 해왔다. 강릉국뿐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 선택은 PD의 권한인데, 저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원고료 삭감할 때는 표준계약서를 무시하고, 프로그램 개편이라며 표준계약서를 들이댔다.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도입한 게 표준계약서인데 그게 악용된 첫 사례인 것 같다.

지금 이 문제가 저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누군가는 저와 같은 일을 겪었는데 말을 안 했을 수도 있다. 이 바닥에 발을 다시 들여놓게 될 때 PD한테 찍혀서 좋은 건 없다. PD들끼리는 연대가 있고 어떤 작가가 재취업을 할 때 이전 경력을 조회할 수 있다. 누군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저처럼 이렇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저는 이미 나이도 있고 하다보니 툭 터는 것이다.

본사 측에서 방관하는 게 섭섭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프리랜서가 이렇게 복종을 강요당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1년 넘게 인권침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왜 방관하는 것인지 많이 섭섭하다. 무엇이 제작의 자율성인지, 방임이 아닌가 싶다.

저는 표준계역서 도입을 반겼다. 스리슬쩍 작가들이 아웃되는 게 아니라 명백한 근거를 갖고 작가들과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계약이라는 게 관계가 투명해지는 것이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부메랑을 맞은 것인지, 회사가 표준계약서를 왜 도입했을까 회의적이다. 작가 하나가 강릉방송국이라는 조그만 방송국 안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KBS가 표준계약서가 악용되는 사례를 방관하지 말고 적극 나서서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 지역국 프리랜서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다른 것 바라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다."

-표준계약서가 없었던 시절 재계약이나 계약 해지는 어떻게 이뤄졌나

"그동안 강릉에서 계약을 해지하는 일은 없었다. 구두계약도 없었고 계약서도 없었다. 지역에서는 임금도 적고 작가들을 찾는 게 굉장히 힘들어서 어렵고 귀찮으니 별다른 말없이 개편이 이뤄졌고 계약은 그냥 쭉 갔다."   

-성희롱 사건 신고에 대한 성평등센터 결정문이 나온 이후 KBS 감사실 측에서 직장 내 괴롭힘 명목으로 추가 신고하라는 요청이 왔지만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유는 무엇인가. 

"성평등센터 결정 후 혹시 성희롱 관련 말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접수하고 싶으면 따로 접수하라는 회신이 왔다. 저는 이미 성희롱 내용과 탄원서 내용을 함께 보냈는데 추가된 내용으로 따로 접수를 하라는 회신이 오니 의지가 없다고 받아들였다. 

성평등센터는 센터장님도 외부 분이시고 조사도 외부에서 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인사운영부는 KBS 직원분들이지 않나. 추가로 낸다고 해봐야 결과가 뻔하지 않겠나 싶었다. 성평등센터 결정문을 보면 첫 줄에는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지만 쭉 읽어보면 성희롱 관련 계연성이 높지 않나.

당사자성에서 밀려 인정이 안된 내용들도 있지만 성희롱 사건 자리에는 제가 있었고, 저도 수치심을 느꼈다. 결정문을 보고 '거짓말이라는 게 이렇구나.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거짓말을 해서 PD 두 사람을 구하기에 나섰구나' 생각했다." 

-추가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있나

"한 외부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제가 서울에서 결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제가 나이가 많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나의 결혼이 화제가 되느냐고 우스개로 넘겼더니 진지하게 묻는 거라고 했다. 강릉국 직원이 이걸 발설했다고 했다. 기자를 통해 외부로 저의 사생활을 소위 가짜뉴스로 만들어 퍼뜨렸다. 저를 만신창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굉장히 불쾌했다. 인성은 형편없고 사생활은 질척거린다는 저에 대한 마타도어로 느꼈다. 회사에서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사내에서 그런 소문이 퍼져있다는 것이고 이건 100% 허위였다. 왜 내 사생활을 회사 사람들이 난도질 하는지, 도대체 나에 대한 회사 사람들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말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직원들이 나서서 외부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내보내는데 회사사람들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저를 음해한 사람들을 회사가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가가 이렇게 곤경에 처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PD 위세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 작가라도 좀 다른 생각, 다른 목소리를 내면 회사 안에서도 귀기울여 반영해주었으면 좋겠다. 

차별없이 공정하게 절차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프로그램 개편은 좋은 것이다. 쇄신을 하자는 것인데 수신료의 가치를 반영하는 KBS가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거니까 공정하면 저도 받아들인다. KBS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가듯 나갈 순 없지 않나. 

KBS 자체적으로 감사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KBS 강릉국은 강릉시민들이 참 사랑하는 매체다. 택시를 타거나 차를 타면 1라디오에 주파수가 고정돼 있다. 그만큼 시민들이 많이 신뢰하고 듣는다. 그렇다면 좋은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에게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신뢰받는 방송에 저도 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억울함이 든다. 공정하게 해달라. 

저는 고 이재학 청주방송 PD의 사건을 보면서 제 경우와 너무 데자뷰가 됐다. 다만 내가 죽지 않았을 뿐이다. 저한테 우호적인 사람들일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 편을 들어야 한다. 성희롱 사건 같은 경우도 그것이 성희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제가 어떤 문제들을 공론화시켰다고 해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을 짓밟고, 이젠 나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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