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정부가 대구에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를 ‘대구 코로나19’라고 표기했다며 날 세워 비판한 조선일보가 정작 중국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우한 코로나’, ‘우한 폐렴’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일종의 '내로남불'로 위험의 정치화로 판단된다.

조선일보처럼 미래통합당 역시 24일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우한 코로나19’라는 명칭을 사용해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았다. 이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우한 코로나19’라고 총 다섯 차례 발언했다. 정부는 정식 명칭을 ‘코로나19’로 정했으나 조선일보와 미래통합당은 지역명이 담긴 ‘우한’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일 중앙사고수습본부와 행정안전부 대책지원본부 합동으로 배포한 코로나19 관련 보도자료의 제목을 ‘대구 코로나19 대응 범정부특별대책지원단 가동’이라고 붙였다. 같은 날 채널A의 ‘서초구 상륙한 대구 코로나’ 뉴스 자막을 비롯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대구 코로나’라는 명칭이 급속도로 퍼졌다.

정부는 이에 대해 “보도자료 제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대구 코로나19라는 명사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이 나가게 됐다”며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이라는 점을 알려드리며, 상처받은 대구 시민 및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네이버 기사 검색에 '우한 코로나'라고 치면 나오는 화면

이같은 표기 논란을 지적한 언론사로 조선일보와 TV조선을 꼽을 수 있다. 조선일보는 22일 자 <정부, 보도자료에 ‘대구 코로나19’라고 썼다가 논란 일자 사과...“명백한 실수”>보도에서 “정부가 우한 코로나(코로나19) 대응 관련 보도자료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대구 코로나19’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 22일 사과했다”고 했다.

같은 소식을 전한 연합뉴스, 매일신문 등이 정부의 보도자료 배포 정황과 사과 입장을 간략히 전한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는 중국 혐오를 조장한다며 ‘코로나19’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정부가 ‘대구 코로나’를 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계열사 조선비즈는 ‘코로나19’가 아닌 ‘우한 코로나’, ‘우한 폐렴’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사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1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름을 코비드-19(COVID-19)로 결정하며 “지리적 위치, 동물, 개인 또는 사람들의 집단을 지칭하지 않고 발음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질병과 관련 있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또한 “영어식 이름이 긴 편이기에 정부 차원에서 한글 표현을 별도로 정하여 명명하기로 했다”며 “한글로는 ’코로나19‘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대다수 언론은 ‘코로나19’로 표기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는 ‘00폐렴’ 등의 용어 대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공식 병명을 사용할 것을 언론사에 당부했다. 지역명을 넣은 병명 사용은 국가·종교·민족 등 특정 집단을 향한 오해나 억측을 낳고 혐오, 인종 차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우한 코로나’, ‘우한폐렴’ 명칭이 실제로 중국 혐오를 부추긴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이자 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은 22일 ‘코로나19 국민위험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코로나19를 ‘우한폐렴’이라 명명했을 때 중국에 대한 정서적 위험 인식이 19.7%,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 불렀을 때 11.1%로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해당 조사는 2월 첫째 주, 한국리서치에서 18세 이상 1,000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로 신뢰수준 95%, 표집오차±3.1%다. (자료제공=유명순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장)

‘우한폐렴’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를 묻는 개방형 질문에 '우한폐렴'과 중국을 연상짓는 확률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비해 8% 가량 높게 나타났다. 또한, 두 명칭을 들었을 때 모두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우한폐렴'은 -2.42점, '신종코로나'는 -2.24점으로 나타나 '우한폐렴'이 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명순 교수는 "감염병 명칭이 일으키는 부정적 정서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정보 수용자 및 이용자 중심의 위기소통의 관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라며 "응답자의 66%가 '우한폐렴'을 '신종코로나'로 명칭 변경해 부르는 것을 찬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정부와 언론에서 감염병 이름을 정할 때 명칭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안 그래도 감염병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이 높다면 두려움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며 “(코로나19 명칭을 사용하는 게) 위기 소통에 참여시키는 노력의 하나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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