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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만화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culture critic] '드래곤볼'과 '나루토'에 나타난 폭력과 도덕의 작동 기제
윤광은 | 승인 2020.02.24 14:56

[미디어스=윤광은] 소년만화는 주인공이 힘을 키워가며 점점 더 강한 적수와 싸우는 배틀 장르다. 하지만 소년만화이기 때문에 폭력이 나쁘다는 교화적 메시지도 포기할 수 없다. 많은 소년만화가 이 딜레마를 처리하는 방법은 폭력에 대의명분을 부여하며 폭력을 수단화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한다거나, 최종적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도덕적 정당화의 문법은 폭력을 전시하는 많은 서사가 공유한다. 소년만화는 성장 서사이기 때문에, 그런 공적 포부와 더불어 주인공의 사적 포부가 병존한다. 나뭇잎 마을의 호카게가 되겠다는 야망을 쫓으며 닌자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공적 포부와 사적 포부의 병존이 무너지고, 주인공이 폭력을 수행하는 동기가 완전히 사적 차원으로 흡수되면 더이상 소년만화가 아니다. 단순히 폭력적 충동으로 움직이거나, 복수와 욕망을 위해 싸우는 하드코어한 ‘19금’ 장르가 될 것이다.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가 그런 이야기다.

드래곤볼 1 표지(서울문화사), 나루토 1 표지 (대원씨아이)

공적 포부가 힘을 순치하는 도덕률이라면, 사적 포부야말로 힘에 대한 순백의 도취를 띤다. 나루토가 호카게가 되고 싶은 이유 하나는 무엇인가. 마을에서 가장 강한 닌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소년은 더 많은 물체를 파괴하고 사람에게 확실하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필살기’를 거듭 연마한다. 나선환에서 대옥 나선환으로, 또다시 수리검 나선환으로.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지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지만, 그의 진정한 동기는 더 강한 자와 싸우고 싶다는 전투민족 사이어인의 본능이다.

폭력을 통한 평화의 쟁취와 폭력을 향한 내밀한 도취. 이야기의 본심은 둘 중 어디에 있는가. 소년이 쓰러트려야 하는 ‘최종 보스’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상황 논리가 아닌 쾌락 논리로 힘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정의감에 구애받는 답답한 주인공보다, 이들의 거침없는 태도, 압도적 카리스마는 종종 훨씬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드래곤볼>의 프리더가 우아한 말투로 “내 전투력은 53만입니다.”라는 대사를 뱉을 때 감탄사를 터트리고, <타이의 대모험>의 대마왕이 “노력해서 강해지고 그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면 즐겁지 않나? 너희는 안 그런가?”라고 당당하게 반문할 때 흠칫한 독자는 드물지 않을 것이다.

소년만화의 클리셰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지지하는 주인공과 목적으로서의 폭력을 지지하는 최종보스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서 각자의 사상을 걸고 설전을 벌이며 이 딜레마를 표출하는 것이다. 소년의 의지에 찬 강변이 대마왕의 논리적 웅변을 물리치는 방식으로 결론이 나지만, 이것이 미봉에 불과하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소년만화에서 도덕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을 넘어, 폭력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공동체에 더 큰 위기를 불러들이며 평화를 지킨다는 이유로 더 스펙터클한 싸움판을 벌인다. 나뭇잎 마을을 구하는 싸움이 끝나면 제4차 닌자 대전이 벌어지는 것처럼. 심한 경우엔 이런 허술한 구실조차 유명무실한 농담으로 전락한다. 지구가 멸망하는 걸 왜 근심하겠는가, 드래곤볼로 되돌리면 되는데. 전사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파괴를 수행하며 침략자와 싸운다.

폭력과 비폭력이 아니라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대당하는 건 논리적 오류다. 그것은 폭력을 부정함으로써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필요악으로 긍정하고, 폭력을 포기하기 싫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그것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대화로는 폭력에 항거할 수 없고, 내 안전을 지키는 반폭력은 정당방위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약육강식의 세상이 도래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문명은, 그런 사적 폭력을 몰수하고 제도화된 공적 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소년만화에서, 국가의 존재가 삭제된 무정부 상태의 설정과 정부의 강권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초월적 싸움이 등장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이렇듯 공적 폭력의 개입이 제약된 상태에서 사적 폭력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과 가장 유사한 현실 속 장소는 남자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실이다. <원피스>의 대양과 <나루토>의 나뭇잎 마을, <드래곤볼>의 나메크 행성은 소년들의 삶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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