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기, KBS 탐사보도팀 기자로서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고 MB식 인사에 대해 "법과 원칙도 없다"고 쓴 소리를 했던 박중석 KBS 기자가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박 기자가 취재했던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논문 이중게재 보도'가 보도국 간부의 지시로 KBS 메인뉴스에서 불방된 지 꼭 1년 만이다. 민실위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강령과 규약에 따라 언론의 편집권 독립, 민주언론 실천, 언론인 윤리 확립 등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다.

▲ 박중석 언론노조 신임 민실위원장 ⓒ곽상아
13일 오후, 서울 태평로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박중석 신임 민실위원장은 "전임 민실위원장이었던 노종면 선배가 워낙 잘해서 부담이 많다"며 웃음을 지었다. "KBS에 2000년 입사한 이후 계속 취재부서에만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다른 경험"이라며 "적응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2주일 남짓. 그는 "아직 업무 파악도 잘 안됐다"며 웃었지만, 곧 민실위 운영과 관련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요약하자면 기존의 민실위가 '이러이러한 보도는 잘못됐다'는 '사후감시'에 충실했다면 앞으로의 민실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이러한 보도가 필요하다'며 현장의 기자들에게 취재 소스와 데이터를 직접 제공하는 일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제적' 대응을 하자는 것입니다. 사후 감시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플러스 알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언론노조 민실위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언론들을 향해 '왜 (정부 발표를) 검증하지 않느냐'고 한 것 뿐만 아니라 직접 검증에 뛰어들었습니다. 새로운 팩트들을 발굴해 일선 취재 기자들에게 전달해 주었고, 필요한 전문가들은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었지요. 민실위는 앞으로도 이러한 역할들을 생산적으로 계승할 생각입니다."

박 신임 위원장은 열의에 찬 모습으로 "민실위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민실위원장 한명으로만 운영되는 조직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 리서처 등 인력도 필요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언론노조 내의 많은 이들이 이러한 목적의식에 공감하고 있다"며 '싱크탱크 민실위'로의 전환이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언론노조 민실위에 제보하면 '반드시' 보도된다"

또, 향후 2~3달 사이에 <위키리스크>와 같은 '공익 제보 사이트'를 민실위 차원에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제기할 이슈를 찾기 위해 2~3달 사이에 제보 사이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지난해 천안함 검증 때도 언론노조 쪽으로 여러 건의 의미있는 제보가 들어왔었어요. 개별 언론사에 접수된다면 보도되기 힘들지만 '언론노조 민실위에 제보하면 반드시 보도된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박 신임 위원장의 임기는 약 1년. 장기적으로는 지역신문, 지역방송 등까지 모두 참여하는 민실위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현업에서 목말라하는 제작진들에게 소스를 제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역신문,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이라며 "그동안에는 지역신문, 지역방송 민실위 조직까지 아울러서 민실위 회의를 정기적으로 해오지는 못했었는데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지역 토호세력 등 통제받지 않는 지역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민실위 조직과 연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중동방송의 놀이터에서만 싸우지는 맙시다"

지난해 7월 KBS 새 노조 파업 당시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탐사제작부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 탐사보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KBS의 위축된 분위기를 전했던 박중석 위원장. '파업 이후 지난 1년간 KBS 내부에서 달라진 지점들은 없었느냐'고 묻자 "작년에 파업을 끝내며 '관제방송 거부선언'을 했었는데 그 효과가 100% 있었다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달라지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고 답했다.

"(파업의) 성과가 있었어요. 이제 제작진 혼자서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새 노조에서 성명도 써주고, 공방위도 열어주니까 조직적 대응이 가능하잖아요. KBS도 그렇고 MBC도 그렇고 기자사회나 제작현업부서가 죽은 것은 결코 아니에요.

언론사 내부에서 노조가 공추위나 공방위를 열어 사측을 압박한다면, 제가 소속돼 있는 언론노조 민실위에서는 싱크탱크 역할을 맡아 현업 제작진들에게 필요한 자료들을 선제적으로 제공해 주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금상첨화'이자 엄청난 강점이 되지 않을까요?"

하반기 '괴물' 종편의 시대가 열리면서 언론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그들(조중동 방송)이 만들어내는 이슈에 대해 가타부타 지적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슈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놀이터에 가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제적으로 이슈를 제기해 우리 스스로의 시장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며 "그렇게 함으로써 뉴스 소비자들로 하여금 조중동 방송과의 차이를 판단하게 해줘야 한다. 민실위 뿐만 아니라 언론노조, 더 나아가 언론진영 전체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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