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일부 소속 공무원들은 ‘숨 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이 최근 장관 후보로 정식 발표되기도 전에 남북대화사무국을 방문, 남북관계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폐지 위기에 몰렸다 정부조직 개편 여야협상 과정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깐이었던 셈이다.

▲ 경향신문 2월18일자 1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어떠할 것인지 대충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설마 남주홍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임명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로는 '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적대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인사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할 줄 미처 생각지 못했고, 또 남 장관 내정자가 그렇게 빨리 그리고 마구잡이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보면, 통일부 장관이 누가 되든,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겠지만, 냉전 시대의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펴온 햇볕정책의 결과, 남북관계가 상당부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황적 측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남북 군사적 대치의 엄중함 때문이다.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과거 한나라당 세력(신한국당, 민자당, 민정당)이 집권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남북관계를 10년 전의 상황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 교류와 협력 사업이 꾸준히 증가해 왔고, 국민들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의식과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늘 모르고 치솟는 국제 원유가와 미국 경제의 침체 등 이명박 정부가 마주하게 될 전반적인 경제상황과 국제적인 여건도 상당히 좋지 않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고 강경한 대북 정책을 구사해 남북 사이와 한반도 주변에서 긴장이 고조될 경우 수출과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고, 이것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등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남북관계의 군사적 측면을 보자.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만에 하나 아니 백만 천만에 하나, 남북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초기 1주일 동안에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해 놓은 수천문의 재래식 대포에서 포탄이 비 오듯 쏟아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만 10평도 안되는 땅에 포탄이 1발씩 떨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몇 년 전 북한의 한 고위 당국자가 남북 회담장에서 쏟아낸 ‘불바다’ 발언도 이런 엄중한 군사적 상황에 기초한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하거나 겁먹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처한 엄혹한 군사 안보적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다.

전쟁에 좋은 전쟁과 나쁜 전쟁이 따로 없지만, ‘아무리 좋은 전쟁도 아무리 나쁜 평화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물론,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쉽사리 군사적 대결 상황으로 갈 것 같지는 않지만, 전쟁의 가능성은 단 1%가 아니라 0.0001%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교류와 협력의 확대는 전쟁의 가능성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최고, 최선의 안보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신들만 안보를 걱정하는 것처럼, 조중동 등 언론으로 위장한 범죄집단이 안보에는 단 1%의 허점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하는 얘기다.

▲ 동아일보 2005년 11월14일자 34면.

그래서 소설가 복거일이 2005년 11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게임이론’ 벗어난 對北유화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 전략을 구사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조건 유효하거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런 바탕에서 기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북 강경론자인 남주홍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한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착오를 통해 엄혹하고 엄중한 현실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한반도 안팎에서 일시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일은 있겠지만 남북관계가 전쟁의 위기로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덕분이고 국민들의 높은 의식 덕분이다.

다만, 무리하고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지불하게 될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이명박 당선자는 지금이라도 남주홍 통일부장관 내정자를 다른 인사로 교체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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