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정연주 사장이 지난달 노조위원장과의 술자리에서 "퇴진 압력이 계속되면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동아일보 등을 통해 보도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는 21일자 1면 <"나를 건드리면 KBS 비리 폭로">에서 "KBS 노조가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가운데 정 사장이 노조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계속 퇴진 압력을 넣으면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2월 21일 1면
동아일보 "정 사장 '내부 비리 폭로' 발언 파문"

동아일보는 지난 20일 입수한 KBS 기자협회 운영위원회 내부 문건을 인용해 "정 사장은 지난달 22일 노조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나를 건드리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10대 노조 때 (사장 연임 반대를 위해) 철탑에 올라간 사람 등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데 11대 노조도 그렇게 하면 법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동아는 이어 "정 사장은 비리의 사례로 '한 지방 송신소에선 직원 26명 가운데 10명 이상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그에 맞는 일은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노조 간부가 '발언을 공개해도 되느냐'고 묻자 정 사장은 된다고 했으며 이 간부는 노조 집행위 등에서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이날 사설 <정연주씨, KBS 비리 다 밝히고 사퇴하라>에서도 "자리 보전을 위해 버티기와 저질 폭로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이라니 기막힌 일"이라며 "'정연주 5년'은 KBS는 물론 한국방송사에 씻지 못할 치욕"이라고 썼다.

아울러 "국민은 KBS에 도대체 어떤 비리가 있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면서 "정 사장은 이를 모두 밝힌 뒤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KBS 노조에 대해서도 "KBS가 얼마나 약점이 많기에 정 사장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가"라며 "이제 와 '남의 탓'만 하는 노조도 KBS 부실의 공동 책임자"라고 지적했다.

KBS "왜곡 기사에 강력 대응…정 사장, '비리' 언급한 적 없다"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KBS 사장의 거취 문제가 보수 언론을 통해 계속 거론되고 KBS 노조도 최근 공개적으로 정 사장 퇴진 요구 성명을 낸 상황에서 동아일보의 이같은 '정 사장, 비리폭로 발언'과 'KBS 비리 사례' 등의 보도가 나오자 KBS 내부에서는 진위 파악에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정 사장 발언의 진위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며 "(정 사장은) '비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KBS 노조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라"는 반응을 보이던 KBS는 이날 오후 경영진 명의로 "동아일보 기사는 KBS를 흠집내기 위한 왜곡기사"라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 경영진은 "KBS에는 비리가 없고 사장이 비리를 언급한 적도 없으며 왜 '비리'라는 표현이 생산, 확대돼 가는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혹시 작은 비리라도 있다면 이를 적발·척결할 책임이 전적으로 경영진에 있는데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달 22일 저녁 2시간 30분 동안 정연주 사장과 박승규 노조위원장의 2인 만남에서 회사 전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나 배석자 없는 노사 대표간 비공식 회동이었으며 기록으로 남기거나 발표할 내용은 전혀 없었다"며 "회사내에 불필요한 갈등과 해사 행위가 더 이상 확대 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동아일보 2월 21일 사설
KBS는 또한 동아일보가 정 사장이 밝힌 비리 사례로 인용한 지역 송신소 고액연봉 문제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KBS 홍보팀 관계자는 "KBS 지역 송신소 가운데 26명이 근무하는 곳은 없다"며 "송신소장은 1직급(국장급)이기 때문에 고액연봉이지만 나머지는 그냥 일반 직원인데 어떻게 연봉이 1억원이 될 수 있는가.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KBS노조 "술자리 격앙상태에서 주고 받은 말, 큰 의미 두지 않았다"

정 사장 발언을 다룬 동아일보 보도가 KBS 비리와 방만경영으로까지 불똥이 튀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박승규)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무엇보다 노조가 정 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애써 경계하는 눈치다.

KBS본부 박승규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고 나섰다. 박 본부장은 21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술자리에서 격앙된 상태로 설전을 주고 받다가 나온 용어이고 사례다. 과장된 표현이고 (지방송신소 사례는) 팩트(사실관계)도 잘못됐다"면서 "정 사장이 퇴진할 의사가 없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소문이 나면서 동아일보가 제대로 확인을 하지도 않고 보도했다.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비리 사례'로 지목된 지역송신소 인원과 연봉 문제도 정 사장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언한 것으로 결론지었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취재가 들어왔을 때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는 것이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방통기구 개편으로 시끄러운데 한가하게 사장 문제로 진 빼고 있으니 답답"

이와 관련해 KBS본부 한 관계자는 "정 사장이 술자리에서 말한 제주송신소는 현재 18명이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원은 10명이고 소장과 한두명 정도가 고액연봉이지 나머지는 아니다. 사실 관계도 틀린 내용을 인용하면서 비리사례라고 언급한 동아일보 보도는 오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는 정확한 표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정 사장이 술 자리에서 부적절하게 반응한 것 자체는 사실이 아니겠냐는 해석과 앞뒤 정황이 생략된 채 일부 발언만 전달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KBS 한 직능단체 간부는 "노조가 퇴진을 요구하며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으니 사장이 감정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는지는 몰라도 KBS에 문제가 많고 비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지금 바깥은 방송통신기구 개편 등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면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데 KBS 노조는 한가하게 사장 문제로 진을 빼고 있다. 정 사장과 노조 모두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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