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11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금산분리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산업자본에 불신을 갖고 있다.” 맞다. 불신을 갖고 있다. 중앙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우려한다”고도 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중앙은 이내 본심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이렇게 오버한다.

“나아가 금산분리를 완화하자는 사람에 대해 ‘친기업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몰아붙인다.” 글쎄다. 금산분리 완화가 재벌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친기업적이라고 지적한 적은 있다. 하지만 몰아붙인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금산분리 완화가 갖는 문제점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 ‘몰아붙인’ 기억은 없다. 백 번을 양보해서 이 또한 일정부분 수긍하고 가자. 마지막 대목이 걸린다. “친기업적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으로 금산분리를 재단하는 것이다.”

▲ 중앙일보 9월11일자 사설.
중앙일보의 적반하장식 금산분리 완화 주장

중앙의 사설이 겨냥하고 있는 곳은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주장에 제동을 걸고 나선 김 위원장에 대한 ‘압박’인 셈이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 이렇게 강조했다. “은행은 신용을 창출해 공급하는 기관이고 산업자본은 이를 쓰는 곳으로 어느 나라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의미 있는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4개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은행이 산업자본 즉 재벌소유가 될 경우 은행의 감시역할이 사라지게 되는데 따른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 한겨레 9월11일자 17면.
자본이 많아서 사금고로 쓸 우려가 없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기조’가 중앙일보로선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중앙일보.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로 쓸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환경이 달라졌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76%로 세계에서 가장 낮고, 보유 현금이 40조원을 넘는다. 우량 기업은 은행보다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도 줄을 서 있다. 굳이 은행 돈을 빼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사금고화 문제는 규제와 감독을 통해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다.”

어이가 없다. 지난 2일 공정위원회가 공개한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지배 구조’를 보면 중앙의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공정위의 ‘소유지분 보고서’를 보면 14개 기업집단 소속 29개 금융 보험사가 86개의 계열사에 출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삼성생명 현대캐피탈 롯데카드 한화증권 동양캐피탈 같은 금융 보험사는 소속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에 포함돼 있었다.

▲ 경향신문 9월3일자 16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고객 자금으로 대부분 이뤄진 금융 계열사의 자산마저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 말을 뒤집으면 중앙일보 사설의 ‘허구성’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객 자금으로 대부분 이뤄진 금융 계열사의 자산마저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에 이용하는” ‘산업자본’이라면 금산분리를 완화했을 때 “은행 돈을 빼돌릴 이유가” 상당히 많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금융산업의 대형화와 글로벌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중앙의 ‘궤변’은 사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중앙. “금산분리의 부작용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고 강조하더니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자본을 확충하고, 해외 금융회사를 인수합병(M&A)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이 부족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상위 세 개 은행의 자산 규모가 미국·일본의 8분의 1, 중국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주장하더니 “넘치는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으로 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줘야 하지만, 금산분리가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인데 중앙일보, ‘딴소리’ 하는데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주장하기 전에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언급한 다음과 같은 부분에 대해 해명을 하든 반박을 하든 해야할 것 아닌가.

“은행은 신용을 창출해 공급하는 기관이고 산업자본은 이를 쓰는 곳으로 어느 나라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의미 있는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4개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 왜 글로벌화로 연결이 되는지 그리고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의미 있는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4개에 불과한” 상황인데도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 왜 글로벌화인지 중앙은 답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중앙 사설 어디를 찾아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오직 산업자본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물꼬를 터줘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경제가 산업과 금융을 함께 장악한 재벌에 의해 명운이 좌우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우려 따위는 중앙일보 입장에선 아마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게 틀림 없다.

중앙의 ‘문제점’이자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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