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TV조선은 잘못이 없다. 잘못이라니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이전에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는 영화전문 채널인 채널CGV가 방송해왔지만 작년과 올해 비교적 ‘저렴한’ 중계권료로 TV조선이 방송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의 자리인 작품상을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린북>이 작품상을 받았던 작년 시상식의 시청률은 국내에서 고작 0.9%에 불과했다.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률은 평균 5.6%였다. 작품상 수상소감이 방송된 순간에는 최고 시청률 9.4%를 찍었다고 한다. 유료채널에서 오전시간대 시청률이 1% 내외인 것을 감안한다면 TV조선은 그야말로 ‘좋겠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는 TV로만 나갔다. 아카데미 시상식 순간만을 기대하던 모바일, 온라인 이용자들은 당일 대혼란을 겪었다. TV조선의 네이버 검색어는 순식간에 2위까지 올라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이용자들의 검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TV조선 홈페이지에 가입까지 하고 시청하려고 했지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던 그 영광의 순간, 한국어로 아카데미 수상소감이 들리는 감동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접하지 못한 셈이다. 국경이 허물어진 인터넷 시대에 말이다.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 전시된 TV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연합뉴스)

TV조선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도 모바일, 온라인 생중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도 시청자 불만이야 있었겠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영화 <기생충>은 작년에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지난달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무려 한 달 전이었다. TV조선이 한 달 동안 추가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기란 천지가 개벽해도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시간대 편성되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밖에 있기 때문에 모바일이나 온라인 시청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도저히 짐작하기 힘든 일이었을 게다. 게다가 TV조선은 방송사니까 방송을 방송으로만 제공하면 된 것이지 인터넷까지 제공할 책임은 없다.

KBS, MBC도 잘못이 없다. 요즘 같은 때 중계권료는 재정의 부담이 크다. 각종 중계권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것도 부족해 국내 방송사업자간 경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권료는 아마 ‘상상도 못할 만큼’ 비쌌을 것이다. 하물며 미국 ‘로컬’ 영화제가 무슨 대수라고 이것까지 공영방송이 제공해야 한다는 말인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한국 영화가 세계 최초 비영어권 영화로서 작품상을 받는다 해도 국민들의 관심사안은 전혀 아닐 것이다. 방송법을 어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미스터트롯>도 잘 만드는 TV조선이 독점 생중계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방송권을 구매했든 인터넷 전송권을 구매했든 알아서 잘 하리라 굳게 믿는다.

방통위는 잘못이 없다. TV조선 시상식 중계에서 자막이 좀 이상하고 진행이 서툴렀다는 시청자 불만이 있었다만 방송법을 어긴 것은 없다. 방송법상 보편적 시청권 보장 대상은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경기일 뿐이다.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거? 인터넷은 과기정통부 업무이니까 우리는 잘 모른다. 과기정통부도 잘못이 없다. TV조선은 종편채널이니까 방통위의 소관업무이다. 게다가 인터넷 규제에 반드시 국민적 관심사안을 제공해야 하는 보편적 시청권 보장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방통위 업무도 아니고 과기정통부의 업무도 아니니 ‘아무 일도 아니다.’

미국 영화제이니 미국의 지상파방송인 ABC가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영국의 BBC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도 그건 그거다. 모바일 동영상 시청이 TV를 대체해가고 있고 젊은층일수록 TV단말기보다 휴대폰으로 방송을 시청하더라도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방송통신융합 시대라고 십 수 년 전부터 정책을 이리저리 바꾸고 부처를 붙였다, 쪼갰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방송은 방송이고 인터넷은 인터넷이다. 국민들에게 바뀐 것은 없는 거다.

아무도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운하지는 않다. ‘국뽕’을 인터넷으로 즐기지 못해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시청권을 우리 국민만 얻을 수 없는 언제든 구멍이 뚫릴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시청자 불편에 대해 책임질 방송사도, 정책기관도 없다. 이번에는 미국의 영화제일 뿐이라고 친다지만 다음 번에 이런 일이 어디서든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만큼 우수한 국민들이지만 그 시상식 생중계를 TV수상기로만 보는 나라다. 뻥뻥 뚫린 인터넷을 깔아놓고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혹시 가전사들의 로비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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