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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앤 글로리'- 알모도바르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 그 끝엔 보편적 통찰[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권진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2 18:28

[미디어스=권진경] 어머니의 사망 이후 척추 수술과 우울증까지 겹쳐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감독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페인 앤 글로리>(2019)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강제적으로 신학교를 다녀야 했던 알모도바르 감독은 신학교 졸업 이후 무작정 마드리드로 상경해 고진감래 끝에 영화감독이 되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네아스트가 되었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알모도바르의 영원한 페르소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분한 살바도르 또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유명 감독으로 묘사된다. 실제와 영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알모도바르와 반데라스는 그들의 출세작 <마타도르>(1986) 이후에도 함께 작업해왔다면, 영화 속 살바도르와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 분)는 <마타도르>로 암시되는 이후 수십 년간 얼굴도 안 보는 앙숙으로 지내왔다는 것. 영화를 만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살바도르와 달리, 알모도바르는 고령에도 꾸준히 신작을 내놓는 현재진행형 감독이라는 것이다. 

알베르토와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낸 살바도르가 돌연 그를 찾은 것은 32년 만에 재개봉한 그의 첫 출세작 <Sabor> 때문이었다. 재능있는 배우이지만 그를 찾는 제작자들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알베르토는 헤로인에 중독되어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살바도르 또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헤로인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 살바도르는 스스로를 이렇게 합리화시킨다. ‘나는 오랫동안 잦은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헤로인만 한 안정제가 없다.’ 하지만 마약 또한 잠깐의 고통을 잊게 할 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 살바도르가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것은 그의 유일한 낙인 영화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 매료된 살바도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그 꿈을 이뤘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수많은 명작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창작욕으로 불타오르는 살바도르는 쇠약해진 몸과 마음 때문에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 괴롭다. 

마약을 할 때마다 살바도르는 어머니와의 많은 추억이 깃든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살바도르의 어머니로 반데라스 못지않게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열연 했는데, 어려운 현실에서도 살바도르를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살바도르가 자꾸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 함은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지긋지긋한 가난의 상징이었던 동굴집에서 벽돌공 청년 베나치오(라울 아레발로 분)에게 글과 셈을 가르쳐주면서 교분을 쌓았던 살바도르는 베나치오 덕분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일찍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베나치오와의 만남은 살바도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추억으로 남는다. 

청년이 된 후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분)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살바도르는 훗날 페데리코를 추억하는 글 ‘중독’을 쓰게 되고,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알베르토의 끈질긴 설득 끝에 알베르토의 독백극 무대에 올려진다. 알모도바르의 분신과 같은 살바도르가 만든 대본이 살바도르의 페르소나인 알베르토에 의해 구현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는 텍스트 공개를 주저했던 살바도르는 그 자신을 훌륭하게 연기한 알베르토 덕분에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첫사랑과 재회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고통들과 서서히 마주하기 시작한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돌아보면 살바도르의 영화는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환희가 있었기에 가능한 영광의 산물이었다. 알베르토가 연기한 모노드라마 ’중독’에 이런 대사가 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말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허나 내 기도는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내 자신과 마르셀로를 구원하려 애썼습니다. 마르셀로가 그 자신을 구원했다면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나 자신은 마드리드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날 구원한 것은 영화였습니다.” 

살바도르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착한 마드리드는 언제나 절망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딛고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살바도르는 다시 막다른 길에 몰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영화를 이쯤에서 그만두느냐, 아니면 절망을 딛고 다시 시작하느냐. 살바로드는 영화를 택했고, 과거의 고통과 영광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예술가로서 완전연소하는 삶을 다짐한다.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자신의 과거를 디딤돌로 삼아 영화와 예술, 삶에 대한 소야곡으로 승화시킨 노장의 열정과, 그의 자화상 같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페인 앤 글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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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경 칼럼니스트  knu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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