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하차 압력을 받아온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결국 ‘자진 하차’라는 방식으로 MBC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에서 물러났다. 그는 7년 반 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했음에도, 청취자들에게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조차 남기지 못하고 서둘러 물러났다.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서둘러 드리게 될지는 저도 몰랐다”는 짧은 메시지만이 저간의 상황을 넌지시 짐작하게 할 뿐이다.

김미화씨가 지난 2009년, 신경민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 손석희 교수 등과 함께 교체 대상으로 거론될 때만 해도 실제 교체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는 김재철 MBC 사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줄곧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긴 했지만, 청취율, 광고 판매량 등에서 큰 성과를 보였기에 그 누구도 쉬이 교체를 예상하지 않았다. 아니,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시사 프로그램’을 지향하며 첫 발을 내딛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성과는 실로 컸다. 김미화씨는 매 청취율 조사에서 배철수씨와 함께 ‘진행자 선호도 1,2위’에 올랐으며,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동 시간대 청취율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또, 2010년 연간 광고판매실적에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광고 판매율 100%를 넘어, 추가 광고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친숙한 진행을 통해, 딱딱하게 느낄 법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일 거다.

그러나 결국 김미화씨는 ‘자진 하차’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둘러싼 상황은 변했다. 먼저, 김재철 사장 등 MBC 경영진을 향한 청취자 및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또, 수천 만원에 달하는 광고 물량이 갑작스럽게 빠졌다. 무엇보다 라디오본부 구성원 사이에서 김미화 교체 등을 둘러싸고 “최악의 막장 개편”이라는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구체적으로 MBC노조에 따르면, 김미화씨 하차 이후 한 광고주가 8천5백만원 어치의 광고 물량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다른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펑크난 광고는 다른 광고로 채워졌지만, 공시 가격으로 채우느라 평소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변한 것은 이 뿐 아니다. MBC 라디오본부의 상황도 변했다. MBC는 최근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후임 진행자로 최명길 기자를 확정하는 등 오는 9일부터 라디오 개편을 시작한다고 밝혔지만 라디오본부 내부의 여론은 최악이다.

특히, 개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주체인 PD는 배제되었으며, 이 때문에 일선 PD들은 개편 대상 DJ가 누구인지, 새로 생기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폐지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이우용 라디오본부장 주도 아래 논의되고 결정되었다는 게 내부 구성원들의 증언이다. 이와 관련해, 80년대 입사한 한 고참PD는 최근 열린 라디오본부 총회 자리에서 “지금 입사 이래 없었던 일을 겪고 있다. 이렇게 독재적인 발상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강하게 우려하기도 했다.

7층 엘리베이터에서부터 1층 복도까지 줄기차게 쫓아가며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길 것을 적극 권유(?)한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 덕분에 결국 김미화씨는 자진 하차를 선택했다. 스스로 선택한 하차였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김미화씨를 향해 가해진 수없는 압박과 압력 앞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차’ 밖에 없었다는 저간의 상황을 똑똑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

김미화 하차 이후, 변해버린 MBC 상황에 대해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은 진심으로 만족하시는지 여쭙고 싶다. 라디오를 즐겨듣던 청취자들이 반발하고, 광고 물량이 갑작스럽게 빠지고,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막장’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이 상황이 진심으로 즐거우신지 여쭙고 싶다. 어쩌면 ‘김미화 하차’라는 큰 미션을 성공한 그분들에게 MBC라디오가 망하든 말든, MBC가 망하든 말든 따위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닐 수도 있기에 ‘왠지 헛된 질문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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