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가 한 팀에서 10년 넘게 뛰는 것은 사실 보기 드문 일입니다. 팀에 대한 충성 뿐 아니라 그만큼 팀내 그리고 팬들로부터 신뢰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있어야 가능합니다. 꾸준한 활약, 그리고 팀에 공헌을 한다면 그만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하며, 오랫동안 롱런해 마침내 한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까지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선수와 팀, 그리고 팬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낸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 팀의 역사이자 자랑거리이자, 더 나아가서는 스포츠 역사 전체를 빛낸 영웅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프렌차이즈 스타'의 대표격이었던 K리거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골키퍼 이운재였습니다. 1996년 수원 삼성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해 무려 15년 동안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한 이운재는 수원 삼성의 발전과 함께 꾸준하게 달려왔던 '명 골키퍼'였습니다. 2004년 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당시 포항 골키퍼 김병지와 치열한 선방 대결을 벌이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슈팅을 막아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도, 2008년 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서 눈부신 선방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골키퍼 사상 첫 리그 MVP를 거머쥐었을 때도 그는 수원의 골문을 든든히 지키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면서 팀에 엄청난 공헌을 하며 '수원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랬던 이운재가 올 시즌을 앞두고 돌연 전남 드래곤즈로 새 둥지를 틀었을 때 아쉬워했던 수원 팬들이 많았습니다. 15년 동안 지켜왔고,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수원의 골문을 지킬 것으로 기대했기에 새 둥지를 튼 것에 대한 수원 팬들의 마음은 아프고 또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이운재 역시 수원에서 마무리하고픈 마음이 강했기에 아쉬움은 컸지만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성실한 모습으로 많은 축구팬들에게 보이길 원했던 만큼 정해성 감독과 인연이 깊은 전남으로 팀을 옮기는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운재를 수원 삼성 팬들은 늘 그들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싶어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른 팀에서 뛰고 있지만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팀을 위해 든든하게 골문을 지킨 수문장으로서 충분히 많은 일들을 냈기에 비난, 아쉬움보다는 존경, 응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수원 삼성 팬들은 이운재가 팀을 옮긴 뒤 처음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 빅 버드를 찾는 7일 저녁, 그를 위한 '111초 박수 퍼포먼스'를 펼치기로 했습니다. 수원에서 뛸 당시 달았던 등번호 1번, 그리고 수원의 넘버원 골키퍼 등의 의미를 담아 1을 3번 강조해 111초 동안 박수를 치는 응원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15년간 343경기를 뛰고, 정규리그 4회, FA컵 3회 등 모두 20여 차례 팀 우승에 기여하면서 수원 삼성 서포터 그랑블루로부터 지난 2007년 최초로 '레전드 선수' 공인을 받았던 이운재였기에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응원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팀으로 옮겨 자신이 지지하는 팀과 상대하는 만큼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응원이 부담스럽거나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통상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라도 다른 팀으로 옮기면 배신, 배반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야유,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운재에 대한 박수를 보내는 것은 수원 삼성 입장에서는 아주 뜻깊은 그 순간을 즐기고, 나아가서는 성숙한 K리그 팬 문화의 선도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최근 상대 팀 선수들과 서포터 사이의 충돌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몇 차례 있어 눈살을 찌푸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전에 자신이 응원한 팀에서 뛰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음에도 다른 팀으로 옮겨 적대시하는 시선을 보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랬던 가운데서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고, 또 하지 않았던 응원을 처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수원 삼성 팬들의 '111초 박수'는 흥미롭고 유쾌하면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순간보다 지난 15년 동안 쌓은 추억을 되새기고,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하고픈 팬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응원 박수는 많은 팬들을 자극시키고, 이운재 본인에게도 상당한 감동이 전달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난 해 3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친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 올드 트래포드를 밟아 7만 관중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은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비록 AC 밀란 유니폼을 뛰면서 적으로 친정팀 맨유를 만났지만 승패를 떠나 옛 팬들로부터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은 베컴의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며 팬 문화에 대한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장면을 K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참 설레기만 합니다. 옛 영웅의 귀환을 진심으로 반기는 팬과 그런 팬들 앞에서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주고 싶어 하는 선수 이운재의 훈훈한 장면이 어떻게 장식될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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