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중국인·동양인 혐오에 주요 보수언론도 적극적인 비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 보수언론은 '우한 폐렴' 표기를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일 기사 <승차거부·욕설·폭행… 유럽의 일상이 된 동양인 차별>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등지에서 대중교통 승차거부·자리 피하기, 동양식당·상점 방문 기피, 욕설·폭행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같은 날 칼럼 <동양인 혐오증>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유럽 등 서구권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동양인 혐오를 비판했다. 한 논설위원은 "질병이 편견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중국 당국이 이 사태에 큰 책임을 져야하지만 중국인들은 피해자들일 뿐"이라며 "지금 말로 못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중국인 혐오'엔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2월 10일 만물상 <동양인 혐오증>

이 같은 주요 보수언론의 논지는 지난달 말부터 일관되게 유지돼 왔다. 동아일보 칼럼 <혐오의 칼날>(한승혜 칼럼니스트), <'반아시아 바이러스'>(김영식 논설위원), 중앙일보 칼럼 <혐오라는 면역반응>(한애란 금융팀장), <우리가 중국을 혐오하듯이 서양은 동양을 혐오한다>(손민호 차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폐렴 바이러스를 '20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했음에도 '우한 폐렴'을 고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괄호 안에서 표기한다거나, 제목 전면에 '우한 폐렴'을 표기하는 식이다. 중국인·동양인에 대한 혐오를 비판하는 기사에서도 '우한 폐렴' 표기는 반복된다.

2015년 WHO는 과학자, 국가, 미디어 등에 새 전염병 명명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이에 따를 것을 권고했다. 지리적 위치, 사람의 이름, 동물이나 음식의 종류, 문화·인구·직업, 과도한 두려움을 유발하는 용어 등을 질병 명칭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우한 폐렴' 용어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요 언론은 조선일보, 문화일보, 한국경제 정도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 기사 <靑 '우한폐렴'이란 병명 모두 바꿔… 네티즌 "中엔 왜 저자세로 나가나>에서 중국 눈치보기식 행정이라는 취지의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WHO 권고에 따른 정식 명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맞지만, 주요 외신들도 'wuhan virus(우한 바이러스)'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며 '우한 폐렴' 표현을 고집했다.

한국경제 역시 같은 날 <이 와중에 중국 감싸기? 靑 "'우한폐렴' 아닌 '신종 코로나'로 불러라">라는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 임민혁 논설위원은 5일 <'우한 폐렴' 對 '미국 독감'>에서 "한 민주당 총선 후보가 '미국 독감으로 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러면 미국과 미국인을 혐오하고 비하해야 하느냐'고 했다"며 "중국 혐오를 멈추라며 든 비유지만 차원이 다른 두 질병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일은 아니다. '우한 폐렴'은 중국 혐오를 조장한다며 '신종 코로나'로 고쳐 쓰는 사람들이 굳이 '미국 독감'이란 말을 쓰는 이유도 궁금하다"고 썼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이 위치한 영등포(을) 지역에 출마하는 김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비판이다. '미국 독감' 표현 역시 부적절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한 폐렴' 표현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언론이 중국 식문화를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은 지난달 24일 <'중국발 전염병' 왜 많은가>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육류·생선을 파는 서구식 대형 마트가 중국에선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다"며 "아직도 중년 이상 중국인에게 신선한 고기란 '산 것'이어야 한다. 도시 외곽 재래시장만 가도 눈을 뜬 닭·오리는 기본이고 산 뱀·개구리도 손님을 기다린다"고 썼다.

이어 안 논설위원은 "동물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전파되고 다시 사람끼리 번지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이 발생하기 좋다"면서 "중국발 전염병 공포는 주민들이 가축·가금류와 떨어져 살고, 야생동물의 위험성을 조심하는 등 방역 상식을 지켜야 줄어들 수 있다"고 중국 식문화가 전염병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