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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되지 마소[여해, 바다와 같아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20.02.10 08:48

[미디어스=백종훈] 명상을 지도해주시는 교무님이 편찮으셔서 수원 영통에 있는 한의원에 모시고 갔다. 침 치료를 마치고 수원시청이 있는 인계동으로 장소를 옮겼다. 교무님이 친구를 만나는 사이를 빌려 가까이 있는 옛 일터를 찾았다. 15년 만이다.  

그 시절 나는 번화가 중심에 있는 대기업 직영 편의점 점장이었다. 사무실 근무에 앞서 유통현장을 알아야 하기에 신입사원은 예외 없이 1년 정도 점포근무를 해야 했다. 현란한 불빛과 취기 오른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풍경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가게가 있던 공간이 오락실로 바뀌었다. 바닥은 그대로인데 매대가 있던 자리에 게임기와 코인노래방, 인형 뽑기 기계가 놓였다. 손님으로 드나들던 수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시조 한 구절이 입가에 맴돌았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부점장 K와 내가 상점을 운영하고 C주임이 감독했다. C는 고졸사원으로 입사한 지 9년 만에 주임이 되었다. 그는 승진에 3년 걸리는 대졸사원에 대한 피해의식이 깊었다. 고졸사장을 배출할 정도로 능력을 중시하는 기업이었지만 자기의 한계를 아는 C는 회사 돈에 손을 대려했다.

아내가 관리하는 매장에서 안 팔려 재고로 쌓인 상품과 직영매장에서 잘나가는 물건을 바꿔치기하거나 유령직원을 등록하게 하고서 본사에서 나온 임금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입막음 하려는지 K와 나에게 몇 푼 떼 주려 했다. 공손하게 거절하고 나서 혹여 일이 터지면 방어하려고 그의 지시사항과 행적을 꼼꼼히 기록했다. 

K와 나는 상부에 고발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C는 윗사람들의 약점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1년차 직원인 둘은 신고했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다. 적당히 눈감아 주되 되도록 그와 엮이지 말자는 선에서 물러섰다. C는 부담스러운 나를 야간근무로 밀어냈다.

유흥가라 밤 매출이 총매출의 거의 다를 차지했다. 그 중 단연 담배가 으뜸이었다. 총 판매액의 60프로가 넘었다. 한 갑에 2,500원일 때 대략 월 4,000만원 어치나 되는 매상을 올리다보니 담배업체에게 제법 큰손이었다. 

담배 D가 가장 인기 좋았다. 경쟁사에서는 담배 O를 홍보했으나 따라갈 수 없었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자 해당영업사원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황금시간대에 선반에서 담배 D를 치우는 대가로 매달 일정액을 쥐어주겠다고 했다.

C의 행태를 방관하기로 하고서 더러운 세상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고 자포자기에 빠졌던 나는 담배 영업담당자에게 그러자고 구두로 약속해버렸다. 그는 계약서를 주며 서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날이 밝자 출근한 K와 맞교대하며 어쩔지 상의했다. K는 하루 정도 아무 말 없더니 “우리 이러면 C주임이랑 똑같잖아. 그러지 말자.”라는 말을 남기고 퇴근했다.

짧지만 여운이 강했다. 그리고 많이 아렸다. 입바른 소리하며 뒤에서 그렇게 C를 욕하더니 어느새 그를 닮아버렸다. 남을 손가락질하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꼴이다. 부끄러웠다. 서둘러 구두약속은 없었던 일로 정리했다. 

만일 담배 영업사원의 요구대로 서면에 사인했다면 코뚜레 꿰인 송아지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잡범이 될 뻔했다. 천만다행 K가 제때 옳은 길을 일러줘 덫을 피했다. 이후 그날 일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 작은 이익에 눈멀어 대의를 잃으려 할 때마다 따끔한 경책이 되어준다.

훗날까지 수행자로서 내가 제 몫을 한다면 절반은 그의 덕이다. 수도인을 잡는 재색(財色)이라는 그물 가운데 하나를 걷어준 이가 바로 그인 까닭이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 기독교 구약성서 잠언 27:9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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