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읽기도 까다로운 이 라틴어를 '개념어사전'(들녘, 남경태)은 이렇게 소개한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기계에서 나온 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에서 시기적절하게 신이 등장해 극의 플롯을 해결해버린 데서 유래한 말. 극의 사실성보다 메시지를 중시했던 당시에는 실제로 기중기와 같은 기계 장치로 공중에서 신이 내려와 꽉 막혀있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중략) 작가가 시나리오를 쓸 때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결사'를 고용해버리면 앞과 뒤의 연결에 필연성이 없어진다. 더구나 갈등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관객은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다. (중략) 이 용어는 막다른 상황이나 어려운 결말에서 필연성 없이 등장하여 위기를 해소하는 편의적인 역할 또는 그러한 기법을 가리키는 정식 연극 용어가 되었다. 인과성과 필연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연극과 소설에서는 3류 기법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작문의 3류 기법을 일컫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러나 한때 철학에서 사용될 정도로 애용되던 작법이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 같은 이는 주체와 대상의 연관성을 끝내 해명하지 못하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했다. 그 유명한 본유관념(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관념)이 그것이다. 주제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는 신이 인간에게 그것을 주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후 관념론의 입장을 계승한 철학자들 사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논리를 뛰어넘는 인식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자주 애용되었다.

한국 사회에도 '기계에서 나온 신'이 있다. 미제이거나 혹은 미제가 될 법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등장해 모든 죄를 옴팡 뒤집어쓰며 문제를 종결짓는다. 한동안 잊고 있던 작문법인데 이명박 정부 들어 극적으로 부활, 사회 전 분야에서 두루 애용되고 있다. 바로, 북한이다.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제2부(김영대 부장검사)는 농협 전산망 장애사건 수사결과 발표하며, '북한의 소행'이라고 밝혔다.ⓒ연합뉴스
수사 당국은 농협 전산망 마비가 북한 정찰총국의 소행이란 결과를 발표했다. 근거는 빈약하고, 논리는 취약하다. 수사 당국의 발표를 꼼꼼히 보고 있노라면, 이건 사실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금세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 이건 사전적 의미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현실에 그대로 재연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북쪽에서 신이 내려와 남한 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식이다.

수사당국은 농협 전산망 마비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지으며 그 근거로 농협 전산망 마비에 사용된 IP주소가 지난 디도스 공격 당시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논리는 '발가락이 닮았다'와 거의 흡사한 논리 구조를 띠고 있는데, 우선 모든 근거의 전제가 되어주는 디도스 공격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확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렇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기술적으로 내부의 도움 없이 좀비PC가 된 노트북 한 대만으로 전체 전산망 전체가 멈출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수사 당국은 북한 정찰총국이 천여 명에 이르는 해커 집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동문서답을 늘어놓았다. 이 황당한 설명은 결국, 사건의 기승전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막다른 상황에 어려운 결말을 지어야 하니 필연적으로 북한이라는 '해결사'가 있다고 할 뿐이니, 그런 줄 알라는 억지 부리기의 다름 아니다.

수사 당국의 발표에 대해 보안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범인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얘기"라며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보안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라는 입장이다. 네티즌들 역시 "인간 어뢰도 타고 내려오는 북한이 뭔들 못하겠느냐"며 정부를 냉소하고 있다.

언젠가, 트위터에서 한 문장으로 이명박 정부를 설명하는 'MB는 노·트·북이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사사건건 노무현, 트위터, 북한 탓을 한다는 것이다. 임기 중반까지 모든 사회 문제의 책임을 노무현 정부 탓으로 돌리던 이명박 정부는 언젠가부터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트위터 때문이라고 하고,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죄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둘러대고 있는 모습이다.

농협의 전산망 마비가 정말 북한의 소행이라면, 이건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그래서 어쩔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주류 언론 중에선 조선일보와 KBS 정도가 익숙한 호들갑을 떨고 있을 뿐, 중앙과 동아조차도 정부의 주장을 신빙성 있게 받아주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정부가 그렇다니깐 그렇다고 쓰긴 하지만 이젠, 내심 안 믿는 것은 아닐까? 그냥 또 그런가 보다하고 있는 건 아니냔 말이다. 농협의 전산망 마비가 정말 북한의 소행일까? 워낙에 3류 기법을 너무 남발한 정부이다 보니,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제 양치기 소년의 절박한 외침처럼 들린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