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눠준 옷은 대부분 방제복이 아니라 먼지만 막지 기름은 오히려 빨아들이는 방진복이었습니다 … 그동안 주민들은 화학성분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제복을 입은 게 아니라 반도체 공장 같은 곳에서 미세먼지를 막는데 쓰는 방진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입어서는 안될 옷을 입고 작업을 했던 겁니다 … 주민들은 지금까지 방제효과도 없는 싸구려 작업복을 입고 독극물과 두 달이 넘게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20일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한 내용 가운데 일부다. 보도내용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더 화가 나는 건 “태안군청은 방제복과 방진복도 구별 못 한 채 그저 싼 것만 찾았고 보건복지부는 알고도 못 본 체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연히(?) 국민들에게 태안 자원봉사를 호소해왔다는 사실이 솔직히 믿기질 않는다.

▲ 2월20일 MBC <뉴스데스크>
‘태안피해특별법’에선 삼성 면죄부 주더니…국민이 봉인가

어이없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일자 한겨레신문을 보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삼성의 책임을 묻지 않고 유조선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 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19일 법사위로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충남 태안 피해 주민들이 ‘졸속 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한겨레 2월20일자 12면.
특별법안의 제정 취지가 뭔가. 특별법안을 통해 피해를 입은 태안 주민을 지원한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직 명확한 책임규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가 삼성중공업 크레인선단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태안주민투쟁위원회가 “특별법에 피해 주민 의견이 반영되도록 힘을 다하는 한편 사고 당사자 및 관련 업체 등을 망라해 책임을 묻는 대규모 고소·고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겐 방진복을 입혀 ‘사지’로 몰더니 삼성에게는 특별법을 통해 면죄부를 주려 한다?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상황에 이러한 데도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참 한가하다. ‘태안피해특별법’은 어제(20일) 한겨레(전국단위종합일간지 기준)만 보도하더니 같은 날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한 ‘방진복 파문’을 오늘자(21일) 인용 보도한 아침신문은 한 군데도 없었다.

태안과 관련한 심각하고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데도 대다수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오늘자(21일)에서 <태안 자원봉사 100만명의 기적>에서 “충남도는 이날(21일) 오전 10시 반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의 홍익대 해양연수원에서 ‘기름 피해 지역 자원봉사 100만 명 돌파 기념행사’를 갖는다”는 소식을 1면에서 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자원봉사 강조하는 ‘어이없는’ 동아일보

▲ 동아일보 2월21일자 1면.

사실 대다수 언론은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자원봉사의 손길만을 강조하는 보도태도를 보여왔다.

물론 자원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원봉사만으론 ‘태안의 재앙’이 해결되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태안지역민들의 생계를 해결할 수도 없고 막대한 피해에 따른 보상을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자원봉사가 가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이것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근본적인’ 사태해결을 위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태안 자원봉사를 잠시 중단하고, 대규모 고소·고발에 힘을 보태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자. 지금은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와 언론 모두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지금 태안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에 대한 ‘응징’과 ‘비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