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2012년 2월, 미국대사관 영사는 오렌지레터를 주며 학생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어학연수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계획이 어긋났다. 한국에서 토플시험을 보고 다시 비자를 신청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학원이 가까운 원불교 신림교당에 짐을 풀었다. 옆방에는 교단에서 정책인재로 선발되어 수학 중인 교무님 두 분이 묵고 계셨다. 신림교당 O교무님은 인근 서울대학교에서 원불교동아리 지도를 담당했다.

동아리 학생이 줄어서 걱정이라는 O교무님에게 내 딴에는 간단한 방법을 알려준다며 “예쁜 청년 몇 명만 있으면 되죠. 남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들 거예요.”라고 했다. O교무님은 시선을 옆으로 살짝 옮기더니 자못 진지하게 “나만 예쁘다고 되나...”며 말끝을 흐린다.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다행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얼른 가방을 챙겨 지하철을 탔다. 3호선 압구정역에 내렸다. 박정어학원으로 나가는 4번 출구에 이르기까지 Before, After 얼굴이 크게 실린 광고가 현란하다. 김재현 선생님 수업을 들으러가는 길가에 성형외과가 즐비했다. 중국어 안내문도 많이 보인다. 건너편 빌딩에 성형외과와 비뇨기과가 아래위층으로 사이좋게 놓인 풍경이 야릇한 상상을 일으킨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동경은 뿌리 깊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외모를 인격의 일부로 여겼고 당나라에서도 신언서판(身言書判 ; 풍채와 용모, 언변, 글씨, 지혜)이라 하여 외모를 인재 뽑는 기준 중 하나로 삼았다. 이는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는 중요한 자산이다.

2015년 달라이 라마께서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달라이 라마가 나온다면 그녀는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물론 외면의 아름다움도 강조하셨다. 이에 영적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분이 후계자의 덕목으로 겉모습을 꼽았다며 실망한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나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말씀이었다.

인연의 실마리는 첫인상이기 쉽고 자기 눈에 멋진 교무님이라면 호감 갖기 쉬울 터이다. 그래서 나는 첫 만남에 정감 어린 시선을 건네는 분에게는 얼굴을 사용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추하다며 꺼리는 분들 사이에서라면 마찬가지로 얼굴을 사용하여 조용히 숨어 수행하거나 남모르게 온정의 손길을 보내겠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사람 마음에 미의 기준 또한 흔들려서 나라마다 불상의 얼굴이 제각각이듯 저마다 좋아하는 불상의 얼굴도 서로 달랐다. 거불거리는 불꽃을 따라가다 ‘나’를 잃는 불나방의 어리석음을 애써 닮을 필요는 없다. 때와 장소에 맞게 자기의 얼굴을 사용할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수행하는 장소를 쓸고 닦으면 다음 생에 잘생긴 외모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고 하셨다. 그러니 도량에 뒹구는 낙엽도 법당에 쌓인 먼지도 은혜 아님이 없다. 미래 생에 미남으로 다시 나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씨앗이 된다.

화평하고 고운 얼굴을 갖고 싶거든, 첫째, 아무리 어려운 역경을 당할지라도 화를 내지 말고, 둘째, 남의 마음 상하는 일을 하지 말며, 셋째, 소제(청소)를 잘 하되 특히 대중이 귀중히 여기는 곳과 더러운 곳을 깨끗이 하라 - 원불교 한울안한이치 1:2:18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