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KBS2 <거리의 만찬> 시즌2가 진행자를 바꿔 돌아온다. 새로운 MC는 KBS1라디오 ‘김용민 라이브’ 진행을 맡고 있는 김용민 씨와 배우 신현준 씨다. 하지만 진행자 교체 소식을 접한 여론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거리의 만찬>이 호평 받던 이유의 8할은 여성 진행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16일 시작한 <거리의 만찬> 진행자는 여성들이었다. 마지막 회까지 메인 MC 자리를 지킨 박미선·양희은·이지혜와 더불어 첫 방송 당시 진행자였던 김지윤 정치학 박사,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프로그램을 이끌어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자는 여성이었다.

KBS2 <거리의 만찬> 시즌1 마지막회 방송 장면 (사진=KBS)

지난달 19일 방송된, <거리의 만찬> 시즌1 마지막 회 주제 역시 ‘여성’이었다. 마지막 회에는 55회 중 기억에 남은 출연자들을 초대해 ‘여성의 삶’을 집중 조명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발달장애 아동을 둔 어머니 이은자 씨 (‘아주 보통의 학교’ 편), 여성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 김효영 씨(‘노동의 조건2-3만6천7백 걸음’ 편), 시니어 여성의 삶을 보여준 안경자 씨(‘9988-99세까지 88하게’ 편)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여성 노동자로 사는 삶과 엄마로서 겪어야 했던 고충 등을 나눴다.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과 시스템 변화를 촉구하며, 여성이 투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기를 희망했다. 여성이란 주제 안에 직장, 사회적 지위, 나이가 무색할 만큼 게스트와 MC들은 서로 공감하며 위로했다. 가장 <거리의 만찬>스러운 마무리였다.

<거리의 만찬>의 시선은 항상 사회 약자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정규편성 전 첫 손님은 복직 투쟁을 해오던 KTX 여성 해고 승무원들이었다. 정규편성된 이후에는 임신 중단을 경험한 여성들을, 맘카페와 관련한 엄마들의 경험담을 전했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온 주제와 당사자들이었다.

<거리의 만찬>은 이슈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에 당해봤어?’ 편에는 세월호 보도 당시 언론의 피해자인 홍가혜 씨가, ‘유일한 증언자’ 편에는 고 장자연 씨의 동료 윤지오 씨가 나왔다. ‘나는 고발한다’ 2편에는 미투를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나와 여검사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출연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여성 진행자들의 역할이 컸다. 윤지오 씨가 마카롱을 먹으며 “이러한 사소한 것도 누릴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릴 때 이지혜는 “앞으로 언니랑 같이 다니자”며 윤 씨의 손을 잡았고, 임신 중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박미선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마련된 ‘마음의 소리’ 편에서 이지혜는 “아이도 제대로 못 키우고 일도 제대로 못할까봐”라고 말하며 현실적인 워킹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실제 <거리의 만찬> 제작진 6명 가운데 남성 PD가 5명, 여성 PD는 1명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두드러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여성 진행자들의 몫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거리의 만찬>만의 분위기 덕에 기존 시사프로그램의 형식을 탈피할 수 있었다. 문제의 쟁점을 놓고 찬반을 나눠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이같은 이유로 상도 많이 받았다. 2018년 11월 정규 편성됐던 <거리의 만찬>은 그해 PD연합회의 이달의 PD상을 시작으로 한국YWCA연합회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 중 성평등 부문 상, 여성가족부 양성평등 미디어상 우수상,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을 수상했다.

<거리의 만찬>의 ‘여성 중심의 이야기’는 제작진이 내세운 모토이기도 했다. 강희중 CP는 정규편성 당시, 프로그램 설명회에서 “수많은 남성 중심프로그램이 아닌 여성 중심의 이야기”라며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 대화한다는 것이 우리만의 또 다른 구도와 관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D들이 꼽은 <거리의 만찬>이 호평받는 이유도 여성 진행자들의 ‘공감 저널리즘’이었다. PD저널 <거리의 만찬>이 호평받는 이유>(2019.05.31.)보도에 따르면, PD들이 참여한 연구비평모임에서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프로그램 성공 포인트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소수자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자세’라고 했다. 박미선 등 여성 MC를 대폭 기용한 것은 신선한 시도로, 시청자를 가르치려 들던 과거의 공영방송이 아닌 시청자의 얘기에 귀를 열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미래 공영방송의 가치관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홍 교수는 “‘PD저널리즘’이 여성화되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이 시대의 화두인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측면뿐 아니라, 감정의 디테일에 집중하고 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여성의 능력에 주목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봤다.

지난 KBS 신인 공채에 지원한 시사교양PD 지원자들에게 면접관이 KBS에서 가장 눈여겨본 프로그램을 물으니 열의 아홉이 <거리의 만찬>을 꼽았더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만큼 시청자와 젊은 세대들이 관심갖는 프로그램은 여성 MC들이 선사한 위로와 공감이 앞선 <거리의 만찬>이지, 남성 출연자들이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아니다. 남성 진행자로 바뀐다는 소식에 <거리의 만찬>이 그동안 만들어온 가치가 개편과 함께 퇴색되진 않을까 우려가 앞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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