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입은 모습이 조금은 어색해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기 내내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단 한번도 벤치에 앉지 않고 비에 흠뻑 젖으며 선수들과 함께 호흡했습니다.

전반을 0-1로 뒤지면서 마쳤지만 조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 믿음에 보답하여 후반전에 2골을 넣으며 경기를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기다렸던 승리를 챙기는 데 성공하며 동료 코치진,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독수리' 최용수 FC 서울 감독대행의 '감독 데뷔'는 그렇게 짜릿하게, 인상적인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이 3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FC서울-제주 유나이티티드 경기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 FC서울 제공 >>
황보관 감독의 사퇴로 벼랑 끝에 몰렸던 FC 서울이 최용수 감독대행 체제에서 맞이한 첫 경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현대 오일뱅크 2011 K리그 8라운드에서 후반 박용호와 고명진의 연속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4월 마지막 날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것도 서울 입장에서는 물론 기뻤지만 정식 감독 경험이 없는 최용수 감독대행 체제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옛 위용을 다시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경기였다고 평가할 만했습니다. 특히 '성공적인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이날 한 경기에서 보여주면서 최용수 '감독 성공시대' 가능성을 보인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이날 최용수 감독대행은 양복을 입고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트레이닝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것에 대해 최 대행은 "상대팀 박경훈 감독님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양복을 입은 상황에 아랑곳 않고 최 대행은 90분 내내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독려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합숙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과 쌓아놓은 승리에 대한 의지를 실전 경기에서도 그대로 이어가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강한 열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때로는 박수를 치면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격려했고, 손짓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주문하며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플레이할 것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 터치 라인 가까이에서 계속 서서 경기를 지켜본 최용수 감독대행 (사진: 김지한)
양복 입고 흠뻑 젖은 상태에서 경기를 지켜본 최 감독대행의 모습을 지켜보며 90분 경기를 뛴 선수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극을 안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감독대행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호흡한 '코치님'이자 FC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전설로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그 모습만으로도 투지를 불태우고픈 마음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비가 오는 악조건에서도 몸을 던지고 또 뛰면서 열의를 다한 FC 서울 선수들의 플레이는 그렇게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주장 박용호가 동점골을 넣고, 후반 37분에 고명진이 데얀의 패스를 받아 재치 있게 결승골을 집어넣었습니다. 그제서야 FC 서울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경기 내내 가슴 졸이며 경기를 본 최 대행은 현역 시절 트레이드 마크였던 높이 솟구쳐 오르며 환호하는 세레모니로 기쁨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감독의 사퇴로 아팠던 마음을 추스르는 데 성공하면서 코치진,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90분 치열했던 경기가 끝난 뒤에도 최 대행은 '인상적인 팬서비스'로 경기장을 찾은 1만여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보통 경기가 끝난 뒤에는 상대팀 감독과 악수를 한 뒤에 인터뷰를 하거나 벤치로 들어오는 선수들과 악수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 대행은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뒤로 미룬 채 먼저 코치진, 벤치 선수 등 선수단 전원을 서포터석으로 이끌고 다가가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어 본부석을 향해서도 또 한 번 인사를 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여줬습니다.

▲ 경기가 끝난 뒤 서포터, 팬들에게 다가가 인사하는 FC 서울 선수들, 그리고 최용수 감독대행 (사진: 김지한)
이 과정에서도 최 대행은 단 한 번도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팬들은 "최용수 화이팅" "최용수 감독님,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답례를 했습니다. 많은 비가 온 가운데서도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감사함과 앞으로 잘 하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보여줬고, 이에 팬들은 최 대행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선전을 기대했습니다. 최 대행의 감독 데뷔전은 그렇게 결과적으로나 내용적인 면, 그리고 외형적인 면까지 모두 훈훈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최용수 감독대행에 대해 "오랫동안 감독을 보좌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어느 정도 높은 평가를 하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귀네슈, 빙가다, 황보관 감독과 함께 하면서 팀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고, 서울에서만 선수, 코치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과의 신뢰,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더 좋은 팀이 될 만한 가능성을 최용수 감독대행이 스스로 열어나갈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비록 시즌 중간에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고, 이 때문에 자신이 그동안 추구했던 축구 철학을 얼마나 선수들에게 잘 이식시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황보관 감독의 사퇴 이후 빠른 시간 내에 팀 분위기를 잘 추스르고 열정과 성의를 다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일깨운 이 모습만 놓고 보면 최용수 감독대행의 성공 가능성은 상당히 높게 점쳐지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그 가능성을 첫 경기, 단 한 경기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빼어난 위기 관리 능력으로 일단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한 최 대행의 다음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역 시절, 빼어난 제공권과 득점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트라이커이자 안양 LG, FC 서울에서만 선수 생활을 해 의리 있는 면모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최용수 감독대행.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어넣으며 비를 흠뻑 맞아가면서도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 최 대행의 모습은 잠자고 있던 FC 서울을 서서히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쨌든 신태용, 윤성효, 황선홍 감독에 이어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 감독 탄생'의 예고편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인상적이었던 FC 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K리그 8라운드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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